[토요기획]中 경제보복… 2012년 영토갈등때 日은 어떻게 이겨냈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패권주의적 대응은 2010년과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극단으로 치달았던 중일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외교안보 갈등을 경제·문화 보복으로 푸는 중국의 거친 대응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뼈저리게 겪었다. 일본은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中이 경제 방아쇠 당기면 日은 20년 후퇴할 것”
2012년 9월 상하이(上海)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을 담당하던 40대 일본인 남성은 타고 가던 택시에서 쫓겨났다. 걸려온 휴대전화를 ‘모시모시(여보세요)’라며 받는 소리를 택시 운전사가 들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이나 선술집에서 일본인이란 이유로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주재원은 중국인이 “일본인이냐”고 물으면 “아니, 한국인이다”라고 답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위대 일부는 폭도화했다.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서는 시위대가 파나소닉 공장 등 일본 기업 공장 10곳에 난입해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괴했다. 도요타자동차 매장도 불에 탔다.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에선 일본 백화점 헤이와도(平和堂)가 약탈당해 10억 엔(현재 환율로 약 1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 시위대 수천 명은 일본계 음식점 40곳에 난입해 문과 유리창을 부쉈다.
당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한 달간 일본 기업이 입은 손실을 수십억∼100억 엔(수백억∼1000억 원)으로 산정했다. 불매운동 등의 간접적 영향을 제외하고, 시위대의 물리적인 파괴 행위로 인한 직접적 영향만 따진 것이다.
2012년은 중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중국은 그해 9월 23일 일본에 40주년 기념식 무기 연기를 통보했다. ‘정랭경열’(政冷經熱·정치는 차갑지만 경제는 뜨겁다)을 자랑하던 중일관계는 순식간에 ‘정랭경랭’(政冷經冷·정치도 경제도 차갑다)으로 바뀌었다.
2010년 제1차 센카쿠 사태
일본은 이후 희토류 수입원을 동남아시아와 몽골 등으로 다변화했고, 희토류 없는 제품 개발에 힘을 기울이는 등 기술혁신의 전기로 삼았다. 여기엔 중국이 또다시 희토류 카드를 꺼내 들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약세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2012년 143만 명에서 지난해 637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의 ‘폭매(暴買)’ 덕에 일본 경기도 활성화됐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 6대 자동차 회사의 중국 내 신차 판매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00만 대를 돌파했다.
일본은 중국의 보복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인내심을 유지했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동시에 수출 대상국을 다변화했다. 특히 중국 리스크를 절감한 기업들은 중국 외에 동남아 거점을 하나 더 만든다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돌입했다. 닛산자동차는 센카쿠 사태 두 달 뒤인 2012년 11월 태국에 110억 밧(현재 환율로 약 3500억 원)을 투입해 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도요타도 인도네시아 생산 시설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2012년 73억8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8조5000억 원)에서 2015년 32억1000만 달러(약 3조7000억 원)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2012년 홍콩에 이어 대중 투자액이 2위였던 일본은 2015년 싱가포르, 대만, 한국보다 낮은 5위가 됐다. 반면 같은 기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64억 달러(약 7조4000억 원)에서 116억 달러(약 13조3000억 원)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일본의 투자가 줄고 일본계 기업이 중국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도 감소하자 중국 정부도 점차 태도를 바꿨다.
대단원은 2014년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년 반 만에 열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전략적 호혜관계를 지속 발전시키자는 데 동의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2015년 중국을 방문한 일중경제협회 대표단에 “일본의 대중(對中) 투자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환경 정비를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경제·문화 보복을 가하는 것은 올해 한국을 겨냥한 사드 보복과 2012년 일본을 상대로 한 센카쿠 사태가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센카쿠 사태는 근본적으로 영토 문제였다는 점에서 일본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를 냈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해 아베 총리가 집권했지만 이후로도 민주당 정권이 취했던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사드 배치를 놓고 둘로 갈라진 한국과는 달리 일본 언론은 한결같이 정부 입장을 지지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가 일본보다 크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2015년 기준 69.9%로 일본(30.9%)의 두 배가 넘는다. 중국 전문가 노구치 도슈(野口東秀) 다쿠쇼쿠(拓殖)대 객원교수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처지이고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며 “안보에서 미국·일본과 확실하게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