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피에르 자위 지음·이세진 옮김/180쪽·1만2000원·위고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들여다본들 대단한 것은 없다. 살아오며 긁어모은 단편적 허드레가 연관성도 필연성도 의미도 없이 굴러다닐 뿐이다.”
49세의 프랑스 파리7대학 철학 전공 교수가 쓴 이 책을 훑어 넘긴 뒤 그 띠지를 잠깐 다시 읽었다. 표제의 ‘드러내지 않기’에 대해 저자는 “‘세상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환상을 잠시 내려놓는 경험이며, 허영과 자기중심주의의 독을 해소하는 약”이라고 썼다.
“이 시대의 현대성은 자신을 드러내며 인정받고자 하는 광적인 투쟁뿐 아니라 익명 속에 숨으려 하는 은밀한 투쟁으로도 특정지어진다”고 쓴 지은이는 ‘드러내지 않기’가 극단적으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제안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비겁한 도피자의 함정을 피할 방법으로 겉모습의 유희에서 빠져나오되 그 유희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감시당하지 않는 시공이 이미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초탈의 행복이 순간임을 인정하고 그 순간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얽매여 있는 상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선언적 타협이지만 우울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 데서 은근한 위로도 안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