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규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이후 출구전략은 주로 경제정책에서 강조됐다.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 완화 후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출구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구전략은 정치, 군사, 경제 같은 분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도 역시 출구전략은 필요하다. 언젠가는 사업을 접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80만 개의 사업체가 폐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출구전략을 준비해놓은 소상공인은 얼마나 될까.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폐업이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소상공인은 10명 중에 3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준비 없는 폐업과 마주하게 되면 일단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찾아온다. 사용하던 집기와 설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매장 원상복구 문제로 건물주와 분쟁에 휘말려 행정 처리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소상공인은 고용보험 가입률이 0.5%에 불과하다. 임금근로자와 달리 폐업 즉시 소득이 끊겨 국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준비 없는 폐업은 직접적으로 당사자에게 많은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준비된 폐업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정책은 창업에 집중돼 있다. 별도의 창업지원기관을 두고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이 창업에 지원되는 반면 폐업 관련 지원 예산은 전체 소상공인 지원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의 폐업 관련 정책 수요는 많다. 소기업·소상공인들의 폐업을 대비해 퇴직금 조성 목적으로 도입한 노란우산공제에 자발적으로 90만 명이 넘게 가입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았던 작년 한 해 연간 최대로 20만 명이 가입한 점을 볼 때 소상공인들이 경기가 어려울수록 스스로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수규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