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주간동아팀 차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에만 성난 민심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민간인 신분으로 사흘을 더 청와대에서 머문 것도 염치없는데, 자택 앞에서 보여준 구김살 없는 웃음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저렇게 즐거울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대신 읽은 쪽지 메시지는 그의 웃음이 철저히 연출된 것임을 증명했다. 그 짧은 메시지를 굳이 전 청와대 대변인 출신 국회의원에게 대독하게 한 것도 미리 짜놓은 각본의 일환. 청와대에서 2박 3일 동안 눈총을 받으며 한 일이란 게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작전모의’였다니….
단 네 문장의 ‘4행 메시지’는 ‘탄핵 인용 불복’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속내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이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유체이탈 화법’의 정점을 찍은 이번 메시지는 지난해 11월 4일 있은 대국민사과 때처럼 일부 문장의 주어가 생략되고 인과관계 또한 불명확했다. 하지만 헌재 심판 당시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쏟아낸 말들을 행간에 대입해 보면 그 의미는 거짓말처럼 명확해진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메시지에서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이유를 철저히 숨김으로써 마치 자신이 음모세력의 괴롭힘에 의해 희생된 ‘비운의 대통령’인 것처럼 위장한다. 국민과 지지자들을 상대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셈. 한편으론 ‘민심 난독증’을 가장해 또 한 차례의 여론 왜곡을 시도한다. 국민 80%가 탄핵이 인용되기를 바란다는 여론조사가 넘쳐나는데도 자신은 아직도 국민의 ‘믿음과 성원’을 받는 존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음모세력의 거짓말을 일소하고 친박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도모하기 위해선 더욱 큰 지지가 필요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앞으로의 형사재판에서는 반드시 무죄를 이끌어내겠다고 선동한다.
오랜 시간, 시각을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은 끊임없이 환상에 시달린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간츠펠트 효과다. 국민과 헌법에 의해 파면을 당하고도 여전히 국민 대부분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기며 남 탓을 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의 경우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돌아갈 집의 상태를 점검조차 하지 않은 박 전 대통령, 불분명한 메시지를 통해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박 전 대통령…. 인(人)의 장막을 둘러침으로써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심을 보는 시각을 박탈한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검찰에 출두하는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이 자못 궁금하다.
최영철 주간동아팀 차장 f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