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 주는 폴 알렉시스’.
세잔과 졸라의 인연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부르봉 중학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민한 시절을 같이 보내며 둘은 형제 같은 우정을 쌓아갔지요. 파리로 먼저 떠난 졸라는 편지로 미술 유학 정보를 전하며 화가가 되려는 세잔의 꿈을 독려했습니다. 법조인이 되기를 기대하던 아버지와 갈등하던 세잔이 미술의 길로 접어드는 데 친구 도움이 컸어요.
파리에서 재회한 두 사람의 상황은 예전과 크게 달랐습니다. 부유한 모자 상인의 아들로 풍요롭게 살았던 세잔은 쉽게 미술계 일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홀어머니 밑에서 궁핍하게 지냈던 졸라는 성공적으로 예술계에 입성했지요. 특히 졸라는 인상주의 미술을 지지하는 비평가로 미술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어요. 소설뿐 아니라 ‘나의 친구 폴 세잔에게’라는 헌사로 시작되는 미술비평집을 출간할 정도였지요.
화가가 먼저 친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마네를 포함한 몇몇처럼 세잔도 졸라의 신간 소설 속 실패한 화가 모델이 자신이라 짐작했거든요. 절교 10년 뒤, 순수한 시각과 건축적 구성이 돋보이는 세잔의 예술은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쉰 넘은 화가는 평단 반응보다 옛 친구 평가를 궁금해했다지요.
화가가 절교 편지를 보낸 후 둘 사이에 만남은 없었지만 관계 종식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졸라는 세잔의 ‘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 주는 폴 알렉시스’를 끝까지 가지고 있었고, 세잔도 40년 지기의 죽음에 온종일 오열했다니 말입니다. 충고하고, 직언하는 친교가 부러운 봄날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