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본사와 갈등 자영업 8년에 빚만 남아 “광고비 줄여 토핑하나 더 얹자”… 점주들과 협동조합 세워 새출발 쌓인 빚 감당못해 끝내 극단선택… 가게엔 ‘정기휴무입니다’ 안내문만
피자연합 대표 이모 씨의 피자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철제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 이 씨가 남긴 ‘월요일은 정기휴무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마치 유언처럼 느껴진다. 인천=성혜란 기자 saint@donga.com
14일 인천 중구의 한 피자가게 주인 이모 씨(41)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신의 집 안방 옷장 안에서 발견된 그는 넥타이로 목을 맸다. 하루가 지나 연락이 닿지 않는 사장을 찾으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발견될 때까지 그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짧은 메시지도 없었다. ‘타살 흔적 없음.’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8년 뒤 그에게는 빚만 남았다. 저마다 외식비부터 줄였고 가게 매출은 계속 떨어졌다. 가맹비와 광고비, 재료비 등을 제외하면 적자인 때가 많았다. 견디다 못한 이 씨가 본사에 하소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 씨는 다른 가맹점주들과 함께 본사의 무리한 비용 전가 등을 주장했다. 걷어간 광고비를 어디에 썼는지 밝힐 것과 할인행사 진행 비용을 가맹점주들에게 전가하지 말 것도 요구했다. 본사 앞에서 시위를 열고 노숙 농성도 벌였다. 본사는 상생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올 1월 이 씨는 프랜차이즈를 그만둔 가맹점주들과 함께 ‘피자연합’이라는 브랜드를 발족했다. 협동조합 방식의 회사였다. ‘갑-을=우리’를 내세우며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난 수평적인 프랜차이즈 회사를 추구했다. 식재료도 조합원을 통해 구매했고 광고비도 점주들에게 평등하게 걷어 운영했다. 현재까지 7개 업체가 문을 열었고 상반기 내 10개로 확장할 계획도 세웠다.
“광고비를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손님들에게 토핑 하나 더 얹어주고 싶다. 정직한 브랜드를 만들겠다.” 그는 평소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유명 피자 가맹점을 운영할 때보다 손님은 줄었지만 직접 좋은 피자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이 곧 실현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가맹점 때부터 쌓인 빚이 발목을 잡았다. 돈을 빌려준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직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의 지인은 “이 씨가 최근 들어 자주 ‘죽고 싶다’고 했다. 그때 더 힘을 북돋워주고 도와줬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프랜차이즈 본사 측은 “고인이 사망한 건 안타깝지만 가맹점을 그만둔 지도 오래돼 회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원론적인 의견을 밝혔다.
16일 이 씨의 발인은 가족과 지인 몇 명만이 자리한 가운데 이뤄졌다. 인천의 한 화장장을 거쳐 한 줌 가루가 된 채 울산의 납골당에 안치됐다. 그가 떠난 가게 앞에는 ‘월요일 정기휴무’ 안내문만 기약없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