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문화부 기자
최근 한 미술 전시회에서 관람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던 큐레이터가 여담이라며 말문을 꺼냈다.
“곡선을 중시했던 작가의 가치관에 맞춰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전시 공간을 구성했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해외에서 온 고령의 설치 담당자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시관 1, 2층을 오르내리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답니다. 느낀 바도 많았고요.”
전시회가 끝난 후 그 미술관 앞을 지나게 됐다. 철거된 나무판들이 쌓여 있었다. 그 큐레이터는 마지막 관람객이 떠난 후 얼마나 울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끝난 후에야 거기에 쏟았던 노력과 감정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인간관계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특히 공연은 매일 막을 내리고,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휘발성을 지닌 장르이기에 ‘끝’의 의미를 늘 생각하게 만든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막공’(마지막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막이 내린 후 배우들이 한마디씩 소감을 얘기했다. 여주인공 알돈자 역을 맡았던 배우는 감사 인사를 한 후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여인숙에서 일하며 몸을 파는 알돈자는 거친 노새꾼들에게 잔혹하게 짓밟히지만 끝내 일어서는 캐릭터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두려워하며 떨 때, 다들 할 수 있다고 다독여 줬습니다. 막공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고 고마울 뿐입니다.”
뮤지컬계에서 스타 연출가로 불리는 왕용범 씨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큰 성공을 거둔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때는 배경이 된 스위스를 다녀왔고, 생명과학 윤리를 다룬 논문을 비롯해 찾아본 자료만 2000쪽이 훌쩍 넘는다. 그는 “공연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작업 후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죄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단다.
정호승 시인의 ‘침묵 속에서’란 시를 읽다 보니 이들이 떠올랐다.
‘이별의 시간이 찾아올 때까지는/사랑의 깊이를 모른다는 님의 말씀을/이제야 침묵 속에서 알아차립니다.’(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
끝이란 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과 감정을 깨닫게 만든다. 하얀 종이를 갖다대야 투명한 용기에 담긴 액체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돌아설 때 고마움과 환희,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쌓여 갈수록 스스로에게 잘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