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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손효림]연극이 끝나고 난 뒤

입력 | 2017-03-22 03:00:00


손효림 문화부 기자

“이 전시회가 끝나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최근 한 미술 전시회에서 관람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던 큐레이터가 여담이라며 말문을 꺼냈다.

“곡선을 중시했던 작가의 가치관에 맞춰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전시 공간을 구성했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해외에서 온 고령의 설치 담당자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시관 1, 2층을 오르내리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답니다. 느낀 바도 많았고요.”

큐레이터의 목소리에는 그가 전시회를 준비하며 겪었을 고민과 함께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전시회가 끝난 후 그 미술관 앞을 지나게 됐다. 철거된 나무판들이 쌓여 있었다. 그 큐레이터는 마지막 관람객이 떠난 후 얼마나 울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끝난 후에야 거기에 쏟았던 노력과 감정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인간관계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특히 공연은 매일 막을 내리고,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휘발성을 지닌 장르이기에 ‘끝’의 의미를 늘 생각하게 만든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막공’(마지막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막이 내린 후 배우들이 한마디씩 소감을 얘기했다. 여주인공 알돈자 역을 맡았던 배우는 감사 인사를 한 후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여인숙에서 일하며 몸을 파는 알돈자는 거친 노새꾼들에게 잔혹하게 짓밟히지만 끝내 일어서는 캐릭터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두려워하며 떨 때, 다들 할 수 있다고 다독여 줬습니다. 막공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고 고마울 뿐입니다.”

눈물범벅이 된 채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의 마음고생, 몸 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싶어 코끝이 찡해졌다. 배우들은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실제 삶도 그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역할을 맡아 이 악물고 버텨낸 그에게 더 세게, 더 오래 박수를 보냈다.

뮤지컬계에서 스타 연출가로 불리는 왕용범 씨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큰 성공을 거둔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때는 배경이 된 스위스를 다녀왔고, 생명과학 윤리를 다룬 논문을 비롯해 찾아본 자료만 2000쪽이 훌쩍 넘는다. 그는 “공연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작업 후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죄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단다.

정호승 시인의 ‘침묵 속에서’란 시를 읽다 보니 이들이 떠올랐다.

‘이별의 시간이 찾아올 때까지는/사랑의 깊이를 모른다는 님의 말씀을/이제야 침묵 속에서 알아차립니다.’(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

끝이란 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과 감정을 깨닫게 만든다. 하얀 종이를 갖다대야 투명한 용기에 담긴 액체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돌아설 때 고마움과 환희,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쌓여 갈수록 스스로에게 잘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