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신규 아파트 입주민들이 입주 전 국공립 어린이집을 단지 내에 설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애초에 단지 내에 어린이집을 위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설립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이 공간은 아이가 있는 입주 예정자뿐만 아니라, 아이가 없는 입주 예정자에게도 재산권이 있는 사유 공간이기 때문에 규정상 국공립 어린이집 정책을 지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다시 ‘공동 육아형’ 어린이집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부모들이 어린이집을 지을 예정 공간에 직접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컸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시공사인 경기도시공사는 프로그램과 시설을 제공하고, 학부모들은 보육서비스를, 운영은 민간어린이집 형태로, 아이가 없는 입주민들은 사유재산권(어린이집 공간)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공동체 복지’ 모델을 추진하게 됐다. 주민, 당사자(학부모), 공공기관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 공동체 안에서 보육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집집마다 늘 쓰지 않는데도 자리만 차지해 공간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물건도 같은 개념으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아파트 상가 지하에 사용하지 않는 이불, 의류, 가구 등을 공동으로 보관해주는 공유경제 세탁소나 보관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런 물건들을 따로 보관할 장소가 있다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얼마나 더 넓고 쾌적해 보일지. 더 나아가 이런 공용공간에 커다란 공용 김치냉장고를 설치해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먹는다면, 온갖 가전제품으로 꽉 찬 부엌은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다.
복지국가 모델은 당위성이나 재원에 대한 논의 단계에서 정체되기 쉽다. 그러나 이 같은 ‘공동체 복지’ 실험은 국가와 가족에 의존했던 복지의 틀을 넘어 우리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현대사회에서 복지 수요 영역은 인구, 경제,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기존 복지국가 모델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어졌다. 향후에는 경제와 복지가 지금처럼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과 국가에만 의존했던 복지를 공동체로 전환한다면 더 많은 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인우 사회적경제지역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