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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안창호 재판관, 격정에 못미친 교양

입력 | 2017-03-22 03:00:00

근거 없는 성현의 말 인용… 맥락 어긋난 플라톤 인용
안 재판관, 보충의견에서 부족한 교양수준 드러내
탄핵은 옳지만 논리도 맞는지 헌재 스스로를 돌아보라




송평인 논설위원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에 단 보충의견을 읽으면서 헌법재판관의 교양 수준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옛 성현의 말, 플라톤의 ‘국가론’, 성경의 아모스서에서 한 구절씩을 인용하고 있다.

안 재판관이 언급한 옛 성현의 말은 ‘범금몽은하위정(犯禁蒙恩何爲正)’이다.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라고 풀이하고,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는 일반인의 위법보다 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금몽은하위정’은 옛 성현의 말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탄핵정국에, 한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사람이 그 신문에 연재한 글에 중국 춘추전국시대 재상 관중(管仲)의 말로 소개한 것이다. 풀이도 안 재판관과 똑같다. 그러나 관중의 언행을 기록한 관자(管子) 어디를 뒤져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글쓴이에게 전화를 걸어 전거(典據)를 물었으나 회피하는 답변만 들었다.


할 수 없이 관자를 완역한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그런 말은 없다고 했다. 다른 문헌에 혹시 그런 말이 있지 않을까 중국어 사이트까지 검색하는 수고를 자처해 해준 뒤 찾지 못했다는 전화를 해왔다. 헌법재판소는 안 재판관이 전거가 불명확해 옛 성현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그러나 그 뜻이 통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관자에 범금(犯禁)이란 말은 자주 나온다. 그러나 법가(法家)적 성격이 강한 관자에서 범금은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의 위법을 이른다. ‘범금몽은하위정’을 관자의 뜻에 따라 해석하면 ‘백성의 위법을 지도자가 봐주면 어떻게 백성을 바르게 하겠는가’로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안 재판관은 또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 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공유형 분권제로의 개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언급했다.

국가론의 이 구절은 권력 독점의 경계로 삼기에는 맥락이 크게 어긋나 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들이 통치하는 국가를 이상으로 제시한 반(反)민주주의자다. 인용 구절은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등장하는 국가론 7권에 나오는 말로, 동굴 밖의 밝은 세상을 보고 온 철인들 대신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산 백성이 통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국가가 파멸한다는 뜻이다.

안 재판관은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모르는 듯하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사회의 제1의 적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퍼의 비판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국가론의 정치적 함의가 대개는 불쾌하고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안 재판관은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는 성경 구절도 인용했다. 좋은 말이지만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나라의 헌재에서 특정 종교의 경전을 인용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안 재판관이 다수 의견에 묻혀있을 수 있는데도 굳이 보충의견을 달겠다고 고집해 전거가 불명확하거나, 맥락과 동떨어진 인용을 한 덕분(?)에 재판정 법대에 근엄하게 줄지어 앉은 헌법재판관의 교양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내게는 이것이 흥미로웠다.

18세기 말 영국 사상가이자 의원인 에드먼드 버크는 인도 총독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소추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미국이 헌법을 만들 때 탄핵 사유에서 ‘실정(失政·maladministration)’을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중대한 범죄와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넣은 것은 동시대 버크의 영향이다. 읽는다면 관자나 플라톤보다는 버크를 읽었으면 한다.

헌재가 바다 건넌 탄핵심판을 탱자로 만든 측면이 있다. 국회가 소추한 탄핵 사유인 뇌물죄와 강요죄를 헌법의 재산권 보호 위반으로 바꾸도록 한 것이 그렇다. 어느 나라든 공직자가 뇌물죄 강요죄로 소추되면 그걸 놓고 유무죄를 판단하지, ‘일부러’ 바꿔 덜 명확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뇌물이라고도 강요라고도 하지 않고 막연히 재산권 침해라고 하면 누가 살아남겠나. 탄핵은 결론은 맞지만 풀이가 엉망인 해답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