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生則死로 결국 무너져
언뜻 들으면 대통령 자리를 내놓겠다는 말 같지만 내심은 대통령직을 결코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내치(內治)를 맡기겠다는 얘기도 일절 하지 않았다. 국정 운영의 중심은 대통령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한 담화문이었다.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가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 참모들은 보이지 않았다.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과 수시로 논의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 바로 전날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보고를 청와대 수석이 올렸다니 주변에 변변한 참모 하나 없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즉생(死則生)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차떼기 당’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쳤고, 괴한에게 칼을 맞고도 “대전은요?”라고 선거를 먼저 걱정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했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그랬던 그가 청와대에선 생즉사(生則死)라는 잘못된 길을 걷다가 여기까지 왔다. 국민들이 실망한 것은 “내 책임은 하나도 없다”는 대통령의 태도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에 국민은 고개를 돌렸다. 친박(친박근혜) 패권주의는 정치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어두운 그림자’ 어른거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1년을 옆에서 지켰던 사람이다. 권력의 무서움과 비참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대세론에 취한 문재인 주변에 당장 권력을 잡은 듯 완장부대가 득실대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내각에 “부역행위를 저지르지 말라”고 대놓고 협박하는가 하면 ‘윤병세 졸개들’이라는 험악한 말이 민주당 국회의원 입에서 나왔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