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기자
최근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캠프를 출입하며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적폐청산’이다. 문 전 대표는 대연정 논란에 대해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적폐를 제대로 청산한 뒤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적폐청산’이라는 한마디면 모든 논란이 가라앉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은 느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생경한 단어였던 ‘적폐청산’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60년간의 적폐청산 구상을 밝히면서다. ‘정치인의 표현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것이 여의도의 속설이지만 박 전 대통령이 썼던 표현이 문 전 대표의 시대정신으로 바뀐 것은 아이러니하다.
성난 민심을 고려할 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적폐청산”이라고 외치는 민주당 주자들의 선거 전략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대선을 46일 앞둔 지금까지 보수 진영은 ‘적폐청산’이라는 마법의 주문 앞에서 어떤 이슈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중요하다. 정경유착, 비선에 의한 통치, 기득권층의 반칙 등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아쉬운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전투적인 단어 한마디에 국민통합,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정치 쇄신, 증세 등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굵직굵직한 이슈와 논쟁이 덮여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은 과거에 대한 평가이고,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고 한다. 대선은 국가를 이끌 시대정신을 내놓고 누가 더 많은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지를 겨루는 장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문제 대부분은 대한민국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제도와 시스템을 정상화시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동안 진보 좌파 진영은 “반대와 비판에만 익숙하다”는 혹평에 갇혀 살았다. 지금 민주당이 보다 높은 희망과 긍정을 담은 메시지를 내놓으면 어떨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어디서나 ‘변화(Change)’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를 외쳤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길진균 정치부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