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현주. 사진제공|쇼박스
역사의 현장을 지킨 이도, 그렇게 세상을 바꾼 이도 대부분 ‘보통사람’이다. 평범한 소시민이 한데 뜻을 모을 때 발휘되는 힘은 앞선 역사에서 증명돼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23일 개봉한 ‘보통사람’(감독 김봉한·제작 트리니티픽쳐스)은 평범한 사람의 힘을 보이는 영화다.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싶던, 그래서 범인을 열심히 잡아 국가에 충성하고자 했던 형사가 주인공이다. 배우 손현주(52)가 연기했다.
영화의 배경은 1987년. 손현주에게 1980년대는 20대를 보낸 시기이다. 낯설지 않았다. 손현주는 “그 시절을 대학생으로 보낸 사람으로서, 그 때를 영화에 담는 일에 박찬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 빗대보면 당시는 격동기다. 80년대에 들어서 조금씩 자유로운 분위기도 형성됐던 것 같다. 나는 정극 연극에 몰두하면서 광화문 세실극장, 안국역 근처 극단을 찾아다녔다.”
시대에 각별한 감정을 가졌지만 손현주는 ‘보통사람’이 1980년대 시대상을 전부 담아낸 작품은 아니라고 했다. 극적인 사건을 통해 당시를 엿보게 한다는 설명이다.
영화에서 손현주는 2층 양옥집에서 아들과 번듯하게 사는 게 꿈인 다정다감한 아버지다. 마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검거한 그는 이를 이용해 공작을 벌이려는 안기부 실장의 계획에 휘말린다. 아들의 수술을 약속받는 대가로 불편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보통사람’은 사건보다 사람의 영화다. 손현주 역시 “사람 냄새가 짙게 나는 영화이길 바랐다”고 했다.
사실 손현주만큼 사람 향기 짙은 배우도 드물다. 이런 평가에 그는 “주말드라마와 일일극을 가리지 않고 해온 덕분”이라고 했다.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에 나를 써준 김운경 작가님, 9편을 함께 한 문영남 작가님이 나에겐 은인이다. 내가 무지렁이였을 때 김운경 형님이 월화극 ‘형’(1991년)에 머슴 역으로 써줬다. 그게 시작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고 김인문, 김무생 선생님처럼 대가들이 하는 사람향기 강한 연기가 보고 싶다.”
배우 손현주. 사진제공|쇼박스
● “가정에서? 권위 따위 버린 지 오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손현주는 ‘회식’과 뗄 수 없는 존재로 익히 알려져 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잦은 회식을 주도하며 ‘고기 많이 사주는 배우’로 통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체력 소모가 가장 큰 조명팀부터 회식을 시작해서 각 팀별로 돌아가는 식이다. 그런 뒤에 전체 회식을 하고, 다시 개별 회식에 접어든다. 하하! 회식 때마다 질릴 때까지 고기를 먹자는 게 우리의 모토다. 특별한 건 아니다.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마시는 ‘바카스’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직업적인 특색이나 활동부터 챙기려고 한다. 장윤정도 그의 노래를 즐겨 듣다 친해진 경우다. 배우에게 노래는 정말 중요하다. 젊은 세대가 과거 시대의 정서를 모를 수 있는데 그럴 때 노래 한 곡이 큰 도움이 된다.”
손현주는 “노래를 잘하면 연기도 잘한다”는 지론의 소유자. 연기자 지망생을 상대로 특강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빼놓지 않는 내용이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부르고 표현해야 연기도 된다”는 말이다.
나이를 떠나 누구와도 격의 없이 친해질 준비가 돼 있는 듯한 손현주는 실제 가정에서도 “권위 따위는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을 둔 아버지이다.
“집에선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것 같다. 하하! 특히 아들이 한창 험한 시기를 겪고 있는 때라(웃음), 더 친구처럼 지내려 한다.”
‘친구같은 아버지’가 된 데는 자신이 커온 환경의 영향도 상당하다.
“아버지와 지금도 친하다. 권위적인 분이 아니다. 내가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도 ‘인생 알아서 하라’며 말리지 않으셨다. 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뒷산을 오르면서 생긴 취미다. 내가 지금도 집에서 밥하고, 설거지에 빨래를 하는 것도 아버지를 해온 그대로 내가 하는 거다. 낯설지 않다.”
손현주에게 아들이 자신을 닮길 바라는 지 물었다.
“음…. 나보다는 덜 꼼꼼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길 바란다. 완벽을 추구해도 완벽한 삶은 없지 않나. 아들이 살아갈 사회는 더 각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