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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의 워치콘 X]‘韓日 핵무장 용인’ 트럼프의 속내

입력 | 2017-03-25 03:00:00


이철희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새삼 주목받는 국제정치학자가 있다. 이른바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가로 유명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다. 국가는 단지 생존하기 위해 세력 균형 차원의 파워를 추구하는 것(방어적)이 아니라 최대한 파워를 키워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는 지위에 서려고 한다(공격적)고 보는 냉혹한 현실론자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변심?

미어샤이머는 지난해 초 대선에 나선 트럼프를 두고 “정말 무식한 데다 아무 말이나 해댄다”라고 일갈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뒤에도 “나는 트럼프를 찍지 않았다.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은 재앙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에게 현실주의 정책을 채택하라고 제안하는가 하면 최근엔 “트럼프를 지나치게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간접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미어샤이머는 오래전부터 중국을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동북아시아의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군이 철수하면 일본과 한국이 스스로 군사력을 증강해 중국에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일의 핵무장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곰(중국)을 잡기 위해 먼저 사냥개(일본 한국)의 목줄을 풀어준 뒤 사냥꾼(미국)은 마지막에 나서면 된다는 논리다.

트럼프의 ‘주한·주일미군 철수, 한일 핵무장 용인’ 발언과 놀랄 만큼 똑같지 않은가. 미어샤이머로서는 ‘Mr. 예측불가’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지만 그의 본능적 대외정책에는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다.

요즘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정부로부터 도청을 당했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어샤이머는 국제정치에선 국가지도자의 정직만이 능사가 아니고 국익을 위한 전략적 거짓말은 용인된다고 본다(‘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2011년). 트럼프의 과장과 왜곡, 공포 조장 같은 현란한 언변도 어떤 결과를 낼지 좀 지켜보자는 것 같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은 이미 사상 최대의 방위비 인상안을 통과시켰고 유럽 국가들도 트럼프의 5월 유럽 순방을 앞두고 앞다퉈 방위비 인상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로가 순탄하기만 할지는 의문이다. 장기적으로 동맹관계가 약화되면서 미국의 슈퍼파워 지위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핵무장 한국’ 감싸줄까

아직까지 트럼프는 미어샤이머가 기대하는 장기적·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사업가의 최우선 판단 기준은 돈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머지않아 우리 정부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핵무장 얘기도 흘릴 수 있다. 그렇다고 허용하고 인정하겠다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선 핵보유국 완장을 찬 5개국을 빼곤 꼴사나운 문신을 새긴 ‘불량국가’일 뿐이다. 미국이 나서 한국의 핵무장을 감싸줄지 의문이다. 핵무장은 비용도 덜 들고 훨씬 효율적인 억제 수단이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Mr. 예측불가’인 북한 김정은이 그 길을 빠르게 만들 수도 있으니.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