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EU 창설 모태 ‘로마조약’ 60주년
○ 화려했던 60년의 영광 무색한 ‘EU 붕괴론’
유로화는 달러에 이어 두 번째 통화로 발돋움했고, 최근 20년 사이 EU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두 배가 뛰어오를 만큼 경제 규모도 커졌다. 24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성 속에서도 단일 시장과 자유 통행은 EU의 상징적 성과다.
화려했던 60년을 뒤로하고 EU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개최국 수장인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5일 “지난 10여 년 동안 불행히도 우리는 멈춰 섰고 이는 분열 위기의 도화선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새로 가입한 국가는 2013년 크로아티아가 마지막이다.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첫 이탈국도 생겨났다.
60주년 축하 자리에선 공공연히 EU 붕괴론이 터져 나왔다. 전날 EU 27개국 지도자와 바티칸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없으면 EU가 죽고 말 것”이라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영국의 뒤를 이어서 다른 회원국이 탈퇴하면 EU는 붕괴 위기에 처할 것이고 EU가 붕괴해서 발칸 반도를 방치하게 되면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경제 안보 위기에 국가 간 격차 포용 한계
팍팍해진 경제가 주요 원인이다. 2008년 불어닥친 경제위기 이후 EU 국가들은 상호 협력 모드에서 경쟁 모드로 급속도로 전환했고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하면서 국가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동으로부터 몰려온 이민자와 연이어 터지는 테러는 기름을 부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최근 상황을 1930년대 대공황 속에서 파시즘이 횡행했던 시절과 비교하기도 했다.
EU 초기 가입국인 서유럽과 2000년대 이후 가입한 동유럽의 경제적 격차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드러났다. 2000년대 이전 초기 EU에 가입한 15개국의 4인 가족 월평균 수입은 5000유로에 육박하지만 이후 가입한 13개 국가는 1400유로 정도에 그칠 정도로 경제와 복지 규모 차이가 크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EU의 지원이 이어졌다. 폴란드는 2004년 가입 후 2012년까지 GDP가 46.3%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왜 우리가 수십억 유로를 동유럽에 지원해줘야 하느냐는 서유럽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 통합의 속도와 강도 늦추는 고육책
결국 로마에 모인 EU 정상은 출범 후 처음으로 통합의 속도를 늦추는 고육책을 선택했다. 선언문에 “필요하면 (통합의) 속도와 강도를 달리할 수 있다”는 문구를 담으며 회원국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게 협력의 강약을 달리하자는 ‘다중속도(Multi-speed) 유럽 방안’을 택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강대국들이 선봉에 섰다. 문제는 다중속도 방안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점. 한 EU 고위관료는 한 유럽언론에 이 방안을 스코틀랜드의 이야기 속 네스호 괴물에 비유할 정도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