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구조조정]<上> 혼선 부추기는 정부의 무능
기업 구조조정 관련 정부 부처들이 ‘따로국밥’처럼 겉돌면서 가뜩이나 꼬인 구조조정의 실타래가 더욱 엉키고 있다. 정부 스스로가 “추가 지원은 없다”고 했던 말을 번복하며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시장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 해운경쟁력 하락과 물류대란을 초래했던 한진해운 사태처럼 정부가 혼란을 키워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되풀이되는 부처 간 엇박자
대우조선 도산으로 한국 경제가 입게 될 예상 손실 규모도 산업부와 금융위의 셈법이 달랐다. 금융위는 앞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대우조선이 도산하면 국가적으로 볼 수 있는 피해가 59조 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부가 작성한 내부 문건은 국가 경제 피해 금액이 17조6000억 원으로 제시됐다. 대우조선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가더라도 수주한 계약이 취소되지 않고 건조된다는 것을 전제로 추산한 피해액이다. 반면 금융위는 모든 계약이 취소되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계산했다.
경제 부처 간 업무에 대한 총괄 조정 권한이 있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실무 협의 단계에서 산업부가 해당 문서를 보내왔지만 피해 금액에 대한 산업부 측의 별도 문제 제기가 없어 쟁점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사였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진해운 처리 과정에서도 금융위와 해양수산부가 견해차를 보이며 물류대란을 자초했다. 한진해운의 채권단이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고 사실상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에도 해수부 장관은 “한진해운의 존속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크다”며 회생을 주문했다.
○ 밑그림 없이 시장 불신 부추기는 정부
이번에도 산업부는 대우조선을 정리하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빅2’ 체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해왔다. 반면 금융위는 대우조선 파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우려해 일단 구조조정을 진행한 뒤 빅2 체제로 재편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지원 방안에선 금융위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지만 정부 내부에서조차 “해운업에 이어 조선업 구조개편에 대해서도 통일된 밑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기된 정부의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부재’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의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금융위와 산업부 사이의 힘겨루기가 이미 끝난 다음에 형식적으로 회의만 주재했다.
산업부 문건 유출로 부처 간 엇박자가 확인됐는데도 의견 조정에 나서야 할 기재부는 “관계기관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최종적으로 확정해 발표한 방안”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처별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며 시장에 ‘믿을 수 없다’는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을 더 이 상태로 가게 되면 대우조선 처리도 한진해운 사태처럼 시장에 큰 혼란을 주고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