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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하종대]“사드 보복은 중국의 커다란 전략적 실수”

입력 | 2017-03-27 03:00:00

전 駐中 대사 황병태




중국을 보는 황병태 전 주중 대사의 시각은 남다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모두 능통해서인지 시야가 넓다. 팔순을 넘겼지만 매일 세계 주요 신문 및 잡지를 샅샅이 훑는다. 그런 그가 “중국의 사드 보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측이 머잖아 현실화되길 기대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종대 논설위원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한중 관계가 수교 25년 만에 최악의 상태다. 한국에서는 곧 새 정부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난국을 돌파할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중 관계는 파국을 맞을 것인가?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에게서 ‘영원한 주중대사(永遠的駐華大使)’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수교 초기 한중 우호의 초석을 다진 ‘황병태 2대 주중 대사’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82세의 고령에도 그는 매일 런민일보를 정독하고 홍콩의 유명 시사잡지 야저우(亞洲)주간을 열독하는 등 ‘오늘의 중국’을 관찰, 추적하고 있었다.》
 
중국은 지금 진퇴양난

―중국의 사드 보복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면 한미가 사드 배치를 포기할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한미 양국에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이 달린 문제다. 특히 한국인 전체의 생사존망이 걸려 있다. 상황에 따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중국도 정치 체제나 영토 보전 등 핵심 이익 문제는 누구와도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온 국민의 생명과 영토 보전 여부가 걸린 문제를 포기하라는 것은 중국이 이중 잣대를 이웃 나라에 강요하는 것이다.”

대사 재임 기간 중국 고위 지도부의 찬사를 많이 받았던 황 전 대사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발언의 행간에선 중국인들이 한국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기던 시절 대사를 지낸 외교관의 강한 배짱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왕잉판(王英凡)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 일행이 지난주 방한해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학자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만났다.

“왕 전 부부장은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을 지낸 사람으로 내가 대사 시절에 가끔 만났던 사람이다. 새 정부 출범 전에 중국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해 차기 정부에서 양보 카드를 얻어내기 위한 방한으로 보인다. 이번에 온 중국 인사들은 대부분 전직 대사들로 중국 외교부의 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들이기 때문에 사드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

―중국 정부도 사드와 관련해 새로운 돌파구를 열겠다는 뜻인가.

“보복을 통한 사드 철회 유도라는 기조를 바꾸려는 뜻은 없는 것 같다. 이들 역시 중국 정부 관리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얘기를 그대로 반복했다고 하더라. 언론에 공개는 안 됐지만 왕 전 부부장 일행은 오히려 한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사드를 철회하지 않으면 더 큰 ‘후과(後果·뒤탈)’가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고 들었다. 왕 전 부부장 일행의 방한 기간 주한 중국대사관 요청으로 대사관 간부들을 만났다. 주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사드 정책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정부가 바뀌더라도 사드 배치 원칙엔 어떤 변화도 있기 어렵고 사드 보복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중국은 현재 진퇴양난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6자회담 등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고집하지만 학자는 물론 중국의 고위 관리들조차도 만나보면 북한이 대화를 통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는 중국에 원유 공급 중단 등을 요구하며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 등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대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이 레드라인(red line)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몇 년 안에 선제 타격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미국의 선제 타격은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무역보복, 중국에 더 큰 경제적 피해

―사드 보복으로 중국이 노리는 것은….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미국의 동북아 사드 포위 전략이다. 중국은 미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필두로 탐지 레이더만 설치한 일본의 사드에 요격미사일을 장착하고 이어 필리핀에까지 사드를 배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미국의 동북아 사드 배치의 전초전으로 본다. 중국의 목표는 이를 무산시키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보복으로 한국의 사드 철회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중국은 최근 10여 년 사이 중국이 반대하는 행위를 한 노르웨이 프랑스 필리핀 몽골 등을 모두 경제 보복을 통해 굴복시켰다. 하지만 경제 보복을 통해 한국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커다란 전략적 실수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의 70%가량은 중국에서 소비되는 게 아니다. 중국에서 가공을 거쳐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수출된다. 한국을 상대로 무역보복을 하면 중국이 더 큰 경제적 피해를 본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국가이미지도 크게 떨어졌다. 또 외교와 군사 갈등을 빌미로 무차별 경제 보복을 한다면 앞으로 어느 글로벌 기업이 중국 정부를 믿고 투자하겠나.”

―중국은 사드와 관련 일사불란한데 우리는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최근 만나본 중국학자나 지한파(知韓派) 인사 중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지혜로운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들이 한국의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대한(對韓) 보복 정책에 대해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선즈화(沈志華) 화둥(華東)사범대 교수는 최근 ‘북한은 잠재적 적이고 한국이 되레 친구일 수 있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나. 한국의 사드 무기가 과연 중국에 치명적인 안보 침해를 가져오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얼마나 오래갈 것으로 보나.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나 대만 문제, 무역 갈등 등 미국과 협상해야 할 사안이 많다. 다음 달 초 미국에서 개최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것으로 본다. 사드로 인한 한중 갈등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드 보복은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태풍’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평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新중상주의로 무장한 각자도생 시대

―최근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이유는….

“핵심 원인은 중국의 급부상이다. 냉전 시기 미중 양국은 옛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했다. 옛 소련이 베트남 정부와 군사협력을 맺고 베트남 주도의 연방국을 수립하려 하자 중국은 이를 분쇄하기 위해 미국의 묵인 아래 1979년 2월 중국-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체제 대결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력해 되레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장기 전략이 ‘이화제아(以華制俄)’에서 ‘이아제화(以俄制華)’로 바뀐 셈이다.”

―최근 한국 외교는 사면초가(四面楚歌)다.

“현재 국제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다. 경제에서도 자유무역주의가 쇠퇴하고 ‘신중상주의(Neo Mercantilism)’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이데올로기나 가치 동맹을 떠나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다. 블록과 동맹의 시대와 달리 외교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다.”

황 전 대사의 관심은 중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모두 능통한 그의 사무실 책상엔 정기 구독하는 미국의 포린어페어와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일본 최고의 종합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등 세계 유명 시사 잡지가 줄줄이 놓여 있다. 팔순을 넘어서도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 있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수교 초기 주중 대사를 지냈는데 달라진 게 있다면….

“1990년대 초엔 중국이 한국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전자와 통신은 물론 원자력, 항공기 분야까지 전방위로 산업 협력을 요구했다. 그때 좀 더 양국 경제협력을 밀착시켰더라면 상호 윈윈 산업구조가 강화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양국 경제가 완전 경쟁 국면으로 바뀌었다. 대사 시절엔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대(全國人代)의 외교국방위원장을 수시로 만났고, 탕자쉬안(唐家璇) 부부장(차관)과는 주말마다 만나 넥타이를 풀고 한중 관계를 논의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니 안타깝다.”

―사드 갈등 직전까지 한중 관계는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는데….

“한중 관계는 경제 분야에서는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큼 크게 발전했다. 무역액, 투자액이나 상호 방문 인원 등 엄청나게 늘어 양국의 상호의존도가 커졌다. 하지만 정치, 군사 분야에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미중의 전략적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여전히 중국에 전략적 완충지대(Buffer Zone)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 최근 갈등하지 않는 주변국이 없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와 영불당두(永不當頭·영원히 우두머리로 나서지 마라·미국과 패권 다툼을 하지 말라는 뜻)를 유훈으로 남겼다. 장쩌민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이를 잘 지켰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이를 무시하면서 주변국, 나아가 미중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 황병태는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외무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한국외국어대 총장
△13·15대 의원
△제2대 주중 대사
△저서 ‘박정희 패러다임’ ‘유교와 근대화’ ‘침몰하는 자본주의-회생의 길은 있는가’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