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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주애진]맛집의 심리학

입력 | 2017-03-27 03:00:00


신한카드 페이스북 캡처

주애진 경제부 기자

최근 친구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피자집을 찾았다가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냥 돌아섰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뒤 손님들이 몰려든 것이다. 이런 경험에 한동안 TV에 소개된 맛집은 찾질 않았다. 편하게 음식을 맛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TV에는 맛집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불과했던 ‘맛집 소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최근엔 해외 맛집을 둘러보는 여행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맛집 프로그램이 워낙 많아서 방송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가게는 명함 내밀기도 어렵게 됐다. 방송에 서너 번은 등장해야 ‘진정한 맛집’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좋아하는 가게가 TV에 나오면 반가움보다 아쉬움이 더 앞선다. ‘이제 저 집도 한동안 못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TV에 소개된 맛집은 언제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정답은 방송이 나온 뒤 한 달쯤 지났을 때다. 기자처럼 ‘적당한 때’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한카드의 ‘신한트렌드연구소’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나온 가게들의 카드 이용금액 추이를 분석했다. 방송이 나가기 전 한 달의 평균치와 방송이 나간 뒤 주간 단위로 이용금액을 비교했다. 그 결과 카드 이용금액이 방송에 나온 뒤 2, 3주까지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가 한 달이 지날 무렵 평소 수준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확인됐다.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맛집을 찾아오는 속도는 파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약간 달랐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은 방송이 나간 지 3주가 지났을 때 이용금액이 가장 많이(26.3%) 늘었다. 디저트를 파는 가게는 이보다 빨랐다. 방송 후 2주가 됐을 때 이용금액이 평소보다 39.8% 늘었다. 식당과 디저트 가게의 이용금액은 모두 방송이 나간 지 4, 5주 정도 지나면서 평소대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서서히 증가했는데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맛집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를 달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정서적 허기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로저 굴드가 만든 개념이다. 실제로 느끼는 배고픔과 달리 우울하거나 화가 나는 등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음식을 탐한다는 것이다. 이를 ‘맛집 열풍’에 적용하면 삶이 팍팍하고 힘든 현대인들이 맛있는 음식에서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황 속에 그나마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관점도 있다. 지난해 방영한 TV드라마 ‘또! 오해영’의 극 중 인물의 대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일반 사람들이 먹는 것 말고 즐거운 게 뭐 있어. 전용기 타고 해외여행을 갈 거야, 마음껏 쇼핑을 할 거야. 먹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히면서 만족도 높은 게 어딨어.” 맞는 말이다. 1만 원이 넘는 값비싼 디저트를 먹으면 적은 돈으로 사치하는 기분을 누릴 수 있다.

기자도 맛집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서적 허기를 달래거나 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어서는 아니다. 가끔 TV에 나오는 맛집 정보를 적어 두는 건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다. 박찬일 셰프는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맛집은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데 아주 훌륭한 소재다.

올봄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추억을 더 만들어야겠다. 이번엔 TV에 나온 맛집 대신 혼자만 알고 있는 숨은 맛집에 갈 생각이다.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데 한 달이나 기다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주애진 경제부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