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형 인재 시대’… 진로가 희망이다
■학생의 미래 진로와 학생부종합전형 -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교수)
이 때 중요한 것은 학생의 지속성장 가능성이다. 이제는 10대와 20대 때 배운 결과로 평생을 살아가는 세상은 끝났으며 누구나 그 시대에 맞는 내적 공간을 새롭게 충전해 가야한다. 학생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자질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려면 장기간의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날 대학입시는 학업성취도를 양적으로 확인하는 집필고사에서 나아가 교사들이 3년간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학생부로 중심을 옮겨갔다.
학생부종합전형은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내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각자가 내면세계도 다르고, 처해 있는 환경도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개인이 걸어 온 과정을 고등학교의 평가와 대학의 해석을 통해 확인하려는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선발기준은 학교생활충실도이다. 그런데 학교생활이라 하니 많은 학부모님들은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염두에 두는데 학교생활의 중심은 교실수업이기에 교실수업을 통한 성장과정에 가장 주목한다. 자신의 진로에 맞춰 어떤 수업을 들었고 수업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고 그것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어떠한지, 수업에서 가진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거나 자신의 바탕을 다져주려는 생각에서 학교의 어떤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확장해 갔는지….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이다. 그러니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자신의 진로에 맞게 수업과목을 선택하여 듣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전공하려 한다면 교육과정에 있는 물리II 과목까지 이수하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 물리II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든지 중간에 전공희망이 바뀐 경우 그런 상황을 진솔하게 설명하면 대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대학의 전공 선택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많은 부분들을 결정지어 주기에 누구나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이제 자녀들의 공부만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진로를 권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직업이 유망할까? 유망 직업에 대한 예상은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직업 소멸, 분화, 생성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무작성 전통적 선호직업 (의사, 변호사, 회계사)에만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10년 후 일자리의 60%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는데(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직업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합한 직업을 고르기 보다는 미래세계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차분히 갖춰 두는 데 더욱 매진하길 권하고 싶다.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여 키워둬야 할 핵심역량으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미래를 찾아가는 디자인적 사고력(design thinking)을 강조한다. 앞으로는 가르침보다는 배움이 한층 부각될 것이다. 교사가 동일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시대는 지났고 학생 각자가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여 내부에서 자신만의 생각의 공간을 디자인 해 가야 한다는 뜻이다. 차츰 지식이나 정보가 학습이 아니라 검색의 시대로 자리 잡아가면서 암기한 지식을 확인하는 시험은 학교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식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형태로 선별하고, 분류, 재구성, 유통하는 자질, 즉 지식 정보를 스스로 디자인하는 생각의 지도를 갖추는 일이다. 그러니 학교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고 생각의 지도를 말로 토론하는 형태로 수업을 바꾸어 줘야 한다. 아마 미래에는 수업 과목도 분야별 지식을 범주화 한 국영수가 아니라 핵심역량을 나타내는 ‘생각 디자인’, ‘비판적 사고’, ‘협업능력’, ‘행복’ 등으로 명칭이 바뀌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러한 변화를 대비한 하나의 기반으로서 미래 진로와 대입전형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가면 좋겠다.
■학종이 학생의 미래를 키운다 - 오칠근(경기도교육청 장학사)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초기에는 선생님들의 고민이 많았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더 충실하게 써주기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배우고 토론했다. 양평고 화학수업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수업, 분당 중앙고 국어수업에서 진행된 토론 수업, 화성 나루고 영어수업에서 진행된 거꾸로 수업, 안산 강서고 사회문화 수업에서 진행된 렉처 포럼 등 학생을 중심에 두고 학생의 역량을 관찰하고 지원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로 그동안 어떤 대학 입시도 바꾸지 못한 교사 중심의 획일적 강의식 수업을 바꾸고 있다. ‘나홀로 강의’를 끝내고 잠자고 있던 학생들과 소통하며 학생이 주인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인 것이다.
또한 예전에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부모님들이 심하게 반대했기에 제대로 된 활동은 정말 어려웠다. 선배들을 따라 어두운 길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학업성취도가 높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지금 학생들은 서너 개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과 끼를 훌륭히 펼쳐내고 있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다. 시키지 않아도 탐구하기 위해 책을 읽고, 나눔을 위해 봉사활동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도전하기 위해 학교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에 앞 다투어 참여하고 있다. 헛된 공약만 남발하던 학급회와 학생회 임원 선거도 어른들이 본받을 만한 참된 모습으로 꽉 차있다. 이것 말고도 학생부종합전형이 학생, 교사, 학교를 변하게 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학생들은 타임푸어로 살고, 교사들은 수시노동자라는 혹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수업과 학교활동의 결과가 대학 입시에만 종속된다는 비판도 여전히 있다. 당장 대학입시가 없어진다면 모를까, 입시를 염두에 두지 않는 고등학교 교육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교육에서 미래를 본다. 미래사회의 주인공이 될 우리 아이들에게 어디에도 쓰이지 않을 문제풀이 암기식 교육과 수동적인 삶을 강요하면 안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을 흔들지 말고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바람막이가 필요하다.
■학종이 교육변화의 물꼬가 되길 - 김관순(고등학교 2년 학생의 부모)
첫째 아이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전신인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영상을 좋아해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 컴퓨터로 편집하고 공모전에 출품한다고 날밤을 새곤 했다. 교과활동도 비교적 성실히 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 만들기, 연극 동아리와 같은 비교과 활동을 꾸준히 한 결과 가고 싶은 학과에 진학했다.
둘째는 유아교육과로 진로를 정한 후 고 1때부터 봉사할 유치원을 스스로 찾아갔다. 처음엔 유치원에서 주로 청소를 도와주었는데, 유치원 선생님들이 차츰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도 요청하고 많은 조언도 해주었다고 한다. 둘째는 수행평가와 같은 실질적 활동은 즐겨 했으나, 수능시험이나 지필평가는 좋아하지 않았다. 객관식 정답 맞추기 시험이 미래를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지, 왜 이런 지겨운 입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늘 불만이었다. 입시를 치른 대한민국 대다수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도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은 돌아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논술전형으로 진학하기는 했지만 고교 때 했던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이 그나마 학교 생활을 견디게 해 주었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학종’은 학생 스스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한 것을 인정해주는 입시전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학종을 소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입시라고 비판들을 한다. 학원의 도움이나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없이는 학종으로 대학 가기 어렵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학종도 제한적인 것이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학종 역시 일부의 현상을 너무 부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은 아이들이 가는 것이지 학원 관계자나 부모가 가는 것이 아니다. 학원이나 부모를 통해 쌓은 스펙은 본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한 내용이 아니면 자기소개서가 알맹이 없는 글이 되기 쉽고, 면접에서도 면접관의 돌발 질문이나 심층 질문에서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선발해 온 면접관들이 그 진위 여부를 가릴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그런데도 학생과 학교가 아닌 제 삼자의 개입(부모나 학원)이 지나치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고, 그래서 학종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식 암기 공부보다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학종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교육적인 취지에서 도입되었지만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반칙을 쓰면 그 제도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학종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 학교가 형식적인 지원에만 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을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으면 한다. 대학도 고등학생 수준을 넘어서는 과한 활동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교과 성적 역시 대학 수업을 이해할 수준으로 내신 등급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만이 학종 본래의 취지대로 공교육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학종에 한 줄을 집어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재밌기’ 때문에 한 활동이 인정받았다”고 한다.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한다.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가진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대입제도가 21세기에 맞는 제도가 아닐까 싶다. 학종이 제대로 작동하여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물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