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어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통령의 300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 등이 중대한 데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부인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영장 청구 이유로 들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 청구는 최순실 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 등 공범으로 구속된 피의자들과도 형평성이 맞아 일단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구속 수사는 혐의가 소명됐다는 전제하에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한다. 중대한 혐의는 그 자체로는 구속 사유가 아니지만 검찰은 중대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이미 수사 개시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공범들이 재판까지 받고 있는 데다 그동안 거주하고 집무를 보던 청와대를 나온 뒤다.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인멸할 주요 증거가 남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 신분이었기 때문에 강제 수사를 할 수 없었다. 당시에 증거인멸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속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와서 뒤늦게 구속 수사를 한다는 것은 구속을 중대 혐의자에 대한 사전 처벌로 여겨온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전 처벌로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탄핵을 당한 뒤 서울 삼성동 자택에 사실상 갇혀 충분히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수남 검찰총장도 자신을 임명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기에 앞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영장을 청구한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처리했어야 할 문제를 법원에 떠넘긴 것은 아닌가. 이제 법원이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국가를 존망(存亡)의 위기로 몰아넣은 쿠데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전직 대통령이 적어도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국격(國格)과 직결된다. 형사재판은 국가의 법과 문화적 척도가 될 수 있는 만큼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