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제 9단 ● 알파고 9단 4국 7보(84∼97)
흑 ○에 커제 9단이 망설인다. 86의 곳으로 젖히면 우상 흑을 잡을 수 있지만 좌상과 중앙을 꽁꽁 틀어막힌다. 그건 곧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반대로 백 84에 젖혀 우상 흑을 살려주기로 한다. 백 92까지는 외길 수순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흑은 선수로 우상을 살린 뒤 흑 93으로 거꾸로 백을 위협한다. 백으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우상 흑을 포기하고 변화를 꾀했는데 알파고의 대응이 전혀 빈틈이 없다. 마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몸부림쳐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백 94는 선수. 흑 95를 두지 않으면 참고도 백 2가 있다. 백 6까지 흑은 두 집을 낼 수 없다. 상변 백과의 수상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97을 맞아 상변 백이 사경을 헤맨다. 이 백을 살리려면 얼마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까. 초읽기에 몰린 커제 9단은 수심에 빠질 겨를도 없다. 그런데 짧은 순간에도 커제 9단은 원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아직은 승부가 끝난 게 아니다’라는 희망을 갖고 커제 9단은 다음 수를 내려놓는데….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