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로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을 맞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늘어나는 등 한국인의 일상을 바람직하게 바꾸고 있다는 청탁금지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음식점이나 주점 등에서 소비가 5개월 연속 감소하고 백화점의 매출 하락세가 뚜렷해지는 등 일부 업종에서는 법 시행으로 인한 피해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분적인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부처들도 내수 진작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데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의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근 상가에서 해물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모 씨(55·여)는 지난해 9월 28일 이후 한숨이 늘었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가 공무원이라 일찌감치 단가를 1인당 2만5000원 이하로 맞췄지만 매출은 아직도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정 씨는 “연초에 식사 금액 상한을 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말이 나와 한 가닥 기대를 걸었는데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규모 작을수록 더 큰 피해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음식점 및 주점업’의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5.6% 감소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0년 1월 이후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이 부문의 소매판매는 정확히 청탁금지법이 도입된 지난해 9월부터 마이너스가 시작돼 5개월 연속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6∼8월에는 최대 8.3% 증가한 바 있다.
유통업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고가 제품을 많이 파는 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11월에 전년 동월 대비 5.8% 감소한 데 이어 설 명절이 있던 올 1월에도 2.5% 감소하는 등 소비가 눈에 띄게 둔화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대형마트는 4개월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은 지역경제 보고서에서 “수도권의 경우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설 선물 수요 부진 등으로 백화점 판매가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피해는 영세상인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 전후 소상공인·소기업 경영실태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상공인(직원 5인 미만)의 평균 매출액(1683만4000원)은 1년 전보다 33.9% 감소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소상공인 가게의 종업원 수도 평균 11.3% 감소해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경영 상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종업원 수를 줄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들은 침체된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청탁금지법을 다소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실제로 기재부는 올 2월 내수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청탁금지법의 식사 상한액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을 적극 검토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을 우려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반대가 완강해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
여기에 대선 정국까지 맞물리면서 청탁금지법에 따른 소비 위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A 씨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큰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외부 약속도 꼭 필요한 자리만 잡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수정’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다”면서 “청탁금지법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