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터널 빠진 한국 멜로영화

멜로 영화는 전도연, 손예진, 김하늘, 수지 등 여배우들이 인지도를 높이고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7년 이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대표적인 멜로 영화. 위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접속’ ‘클래식’ ‘건축학개론’ 속 한 장면. 각 영화사 제공
좀처럼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난해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 50위권에 든 영화 중 ‘멜로 로맨스’ 장르는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29위)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뮤지컬 영화로 정통 멜로와는 거리가 멀다. 한때 국내에서 멜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틈새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장르,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인기 상품으로 사랑받았지만, 이제는 쇠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멜로 부흥기에서 쇠퇴기로
‘접속’을 시작으로 극장가에는 멜로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1997년 ‘편지’,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2000년 ‘동감’, 2003년 ‘클래식’ 등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배우 전도연 김하늘 손예진 등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여배우들이 인지도를 높였다.

범주를 넓혀 박스오피스 상위 50위권에 든 영화를 살펴봐도 정통 멜로 영화가 줄어드는 추세는 뚜렷하다. 2006년 3편의 정통 멜로 영화가 순위권에 진입했지만 2009년 1편, 2013년 2편, 2015년 1편으로 점차 극장가에서 만나기 힘든 ‘귀한’ 존재가 됐다. 관객 300만 명 이상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3편(늑대소년, 건축학개론, 비긴 어게인)에 불과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멜로는 모든 영화 장르의 기초를 형성한다”며 “남녀 배우들이 배우로서의 매력을 뽐내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라는 점에서도 멜로 장르의 하락세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 “사랑은 멀고 먼 남의 얘기”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답답한 현실 탓에 ‘고구마’ 같은 멜로 영화보다는 차라리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오락 영화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TV에서 이른바 ‘웰 메이드’ 멜로드라마가 속속 등장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다. 국내 한 배급사 관계자는 “지상파뿐 아니라 케이블 채널, 최근엔 웹드라마까지 등장해 다양한 소재의 멜로물을 만들어낸다. 다른 채널과의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도 극장가 멜로 영화의 실종 이유”라고 했다.
영화시장분석가 김형호 씨는 “재개봉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국내 관객들의 멜로 영화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라며 “기성세대의 시각이 아닌 주소비층인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 발굴에 힘쓴다면 또다시 멜로 부흥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