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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취재노트]국가주의로 역주행하는 日도덕교육

입력 | 2017-03-29 03:00:00


장원재 도쿄 특파원

“동네 빵집 대신 일본과자점에 가면 애국심과 향토애가 생기나.”

최근 일본에선 24일 발표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올해 처음 검정을 시행한 초등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도쿄서적)에 ‘동네 산책 중 친구의 빵집을 발견하고 마을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일본과 향토의 문화·생활과 친숙해지고 애착을 갖게 한다’는 학습지도요령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수정을 지시했다. 출판사는 ‘동네 빵집에서 향토애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결국 검정 통과를 위해 빵집을 일본과자점으로 바꿔야 했다.

문부성의 ‘깨알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출판사는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에서 노는 사진을 실었다가 비슷한 지적을 받고 ‘일본 악기를 파는 가게’ 사진으로 바꿨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금이 전쟁 중이냐. 시대착오적이다’, ‘카레, 돈가스도 교과서에 나오면 안 되느냐’ 등의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번에 초등학교에서 도덕이 정규 교과로 격상된 것은 2011년 이지메(집단 따돌림)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피해 학생이 매일 자살 연습까지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덕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각에선 도덕 교육을 통해 특정 가치관을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도덕 교과서를 보면 ‘애국’을 강조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다. 일본의 국기와 국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으며, 재해 현장에서 맹활약하는 자위대원의 모습도 들어가는 등 국가주의 색채가 농후하다.

도쿄신문은 28일 “(도덕 교육이) 전쟁 전 ‘교육칙어’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름다운 일본’을 주장하는 아베 총리의 사상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교육칙어는 1890년 메이지(明治) 일왕이 발표한 것으로 군국주의 교육의 사상적 기둥이다. 최근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이 국회에서 교육칙어를 옹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는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우익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의 퇴행적이고 역사수정주의적인 시각이 일본 교육과정에 침투하지 않도록 일본의 양심 세력과 함께 우리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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