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경남 남강에 몰려 있는 삼성 LG 효성 GS 그룹 창업주들의 출생지 농업자본 활용해 교육과 新사고의 투자로 상업자본 산업자본으로 발전 성실 노력으로 小富는 되지만 巨富 되려면 남들 가지 않은 길 가야
황호택 고문
조부 대에 연 소출이 1000여 석(石)에 이르는 부를 이루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부자를 천석꾼 만석꾼 하고 불렀는데, 경작지의 소출 기준이라는 설도 있고 소작료 기준으로 한다는 설도 있다. 천석꾼은 경작지의 소출을 기준으로 할 경우 1000석을 거두려면 농토가 500마지기(10만 평)는 돼야 한다.
호암 생가의 안내판에는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주변 산의 기(氣)가 몰려 있고, 멀리 흐르는 남강이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뤄 명당(明堂)이라는 설명이 들어 있다. 지수리는 높지 않은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농토도 평야지대처럼 넓지 않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호암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선진 문물에 눈을 뜨고, 농업 소출을 자본으로 마산과 대구에서 그 시대의 새로운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미소와 양조장을 하다 무역업으로 뻗어나갔다.
만우 생가에 갔을 때 호암 생가와는 달리 관람객이 드물어 대문에 열쇠가 잠겨 있었다. 조석래 회장의 팔촌인 조경래 씨(신창슈퍼 주인)가 와서 열어주고 집의 내력을 설명했다. 조경래 씨는 “관광객들이 기 받는다고 몰래 장독을 들고 가고 심지어는 우물 옆에 놓아둔 바가지까지 가져갔다”고 말했다. 만우의 생가는 남녀유별(男女有別)의 풍습이 설계에 반영돼 있다. 남자들은 한가운데 솟을대문을 통과해 사랑채 옆에 난 동쪽 문으로 들어오고 여성들은 서쪽에 난 쪽문을 통해 사랑채 옆의 서쪽 문으로 나들이를 했다.
남강 솥바위를 중심으로 8km 어간에 호암, 만우와 LG의 연암(蓮庵) 구인회 씨의 생가, LG와 동업했던 GS의 효주(曉州) 허만정 씨의 본가가 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 있는 연암의 생가는 공들여 가꾼 아름다운 수목이 둘러싸고 있다. GS그룹 허준구 허창수 씨 생가도 바로 옆에 나란히 있다. LG, GS그룹 창업주의 생가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담장 바깥을 둘러보는 아쉬움 속에 답사를 마쳐야 한다.
만석꾼 허만정 씨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셋째 아들 준구 씨의 경영 수업을 사업가로 이름이 높았던 연암에게 부탁했다. 경영 능력과 자본, 인재가 합쳐진 동업은 3대째 이어졌다.
호암 생가에서 가까운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도 삼영화학그룹 관정(冠廷) 이종환 씨(93)의 생가가 있다. 이 씨는 생가에서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사대부 집을 재현해놓았다. 관정은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 2년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광복을 맞았다. 2002년 3000억 원을 출연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인재 육성에 투자하고 있다.
아껴 쓰고 땀 흘려 일하면 소부(小富)는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거부(巨富)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이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