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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어야 일 잘하죠”… 45일 휴가, 토일월 연휴, 공짜 숙소

입력 | 2017-03-30 03:00:00

[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中> 조금씩 바뀌는 기업 휴가문화





2년 차 직장인 함모 씨(27)는 지난해 말 강원 인제군으로 ‘짧은 휴가’를 떠났다. 그를 이끈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자작나무숲 사진이었다. 하얗게 솟은 자작나무와 어우러지는 설경(雪景)에 매료돼 찾게 됐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해 그는 이달 초 연차를 내고 다시 인제군을 찾았다. 그는 “연차를 쓰는 데 제약이 없어 여행을 떠나는 데 심리적인 부담이 없다”며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은 국내 여행지를 자주 많이 찾아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여행 활성화의 핵심은 휴가다. 일단 시간이 있어야 짐을 꾸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장시간 근로를 미덕으로 여기고 휴가를 비용으로 생각하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잘 쉬어야 일도 잘해… 바뀌는 휴가문화


29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장기 휴가, 집중 휴가제 등의 형태로 휴가문화 개선에 나서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재충전을 통해 근무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직원을 위한 ‘투자’로 보는 것이다.

SK텔레콤 직원들은 근무 기간에 따라 길게는 한 달 반가량 장기 휴가를 즐길 수 있다. 2002년부터 근속연수 10년 차에 45일, 15년 차에 15일, 20년 차에 45일의 ‘리프레시(Refresh)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휴가 기간에도 월급은 그대로 지급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신입사원도 눈치 보지 않고 2주 이상씩 장기휴가를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롯데하이마트는 ‘가족사랑연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 가족 기념일에 연차를 사용하면 선물을 주는 것이다. ‘부모사랑연차’ ‘부부사랑연차’ ‘자녀사랑연차’ 등 대상에 따라 선물의 종류가 다르다. 연차를 2일 이상 써서 가족여행을 떠나면 콘도 등 숙박업소 이용료의 절반을 지원하는 ‘가족힐링여행연차’까지 있다.

신세계그룹은 매월 월요일 하루를 택해 연차 휴무를 준다. 주말을 포함해 2박 3일간의 짧은 휴가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2011년부터 운영하는 ‘리프레시 데이’ 제도로 백화점이나 마트 등 매장을 제외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쉬면서 국내로 짧은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경영 화두를 ‘가족친화경영’으로 삼고 휴가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2월부터 겨울과 여름휴가 기간에 국내 호텔의 객실을 임직원이 이용할 경우 회사가 숙박비 전액을 부담해 준다.

두산은 2008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집중 휴가제도’를 권장하고 있다. 장마와 무더위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기 쉬운 7, 8월에 2주일의 휴가를,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1주일의 휴가를 주는 것이다.

○ 잃어버린 1억2000만 일 돌려주자


하지만 휴가를 적극 챙겨주는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서 주류는 아니다. 여전히 장시간 근로를 당연시하고, 휴가를 가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업이 많다.

광고사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 씨(27)는 입사 후 2년 동안 연차휴가를 7일밖에 쓰지 못했다. 김 씨는 “사장은 언제든 휴가를 가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이 가지 않으니 아랫사람들도 눈치가 보여 휴가 가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훨씬 길지만 연차휴가는 오히려 짧다. 온라인 여행전문 사이트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직장인들은 연차휴가 30일,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는 25일을 받아 100%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들은 15일 중에 7일밖에 쓰지 못했다.

소득만큼이나 휴가도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법정공휴일 외에 연차를 별도로 보장받는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공휴일을 연차휴가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공휴일은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결정된다. 엄밀히 말하면 공휴일은 관공서의 휴일일 뿐 근로기준법상의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기업에 쉬라고 강제할 수 없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모 씨(36)는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쓰고 나면 사실상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연차는 2, 3일뿐”이라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니 직원들은 어쩌다 한 번 떠나는 휴가지로 해외를 선택한다. 7, 8월 여름 성수기에 휴가가 쏠리면서 성수기에 국내여행을 가면 교통 혼잡과 바가지요금 등을 겪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차휴가 소진율을 단계적으로 100%까지 확대 △공휴일을 법률로 명시 △설·추석, 어린이날로 제한된 대체공휴일 확대 △학교 방학제도 개편과 휴가 연계 등을 통해 굳이 휴가철이 아니어도 상시적으로 휴가를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승묵 청운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휴가를 자주 쓸 수 있도록 유도해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여행을 가는 사람도 늘려야 한다”며 “구성원들에게 휴가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회사들이 근무 분위기도 좋고 성과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김재희·이새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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