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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의 핫 피플] 잘 나가던 우버에 급브레이크 건 칼라닉

입력 | 2017-03-30 10:45:00


자동차의 개념을 ‘소유’에서 ‘공유’로 바꾼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2009년 설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각종 성 추문, 단속 피하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데이터 부실관리, 자율주행차 사고, 잇단 임원 사퇴, 늘어나는 영업 적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모든 논란의 끝에 트래비스 칼라닉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41)가 있다. “적은 어디에나 있다. 싸움과 대립을 즐기라”며 극단적 실적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직원들을 닥달하는 그의 공격적 리더십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칼라닉 우버 창업자



칼라닉은 이름 없는 스타트업을 기업가치 680억 달러(약 77조5200억 원)짜리 대기업으로 만들었고 본인도 63억 달러(약 7조1820억 원)의 거부가 된 ‘혁신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부적절한 언행, 불같은 성정, 위기관리를 경시하는 모습 등으로 ‘잘 나가던 우버에 급브레이크를 건 장본인’이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남성잡지 GQ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CEO’로 뽑히고 기네스 팰트로 등과의 염문설 등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 우버 역사에 대해 강연하는 칼라닉 CEO



○창업에 미친 청년

칼라닉은 1976년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당시 LA 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슬로바키아계, 지역 일간지 LA데일리뉴스의 광고 담당자 어머니는 유대계 후손이다.

그는 UCLA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시절 한국계 친구와 ‘뉴웨이 아카데미’란 회사를 잠시 운영했다. 미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을 앞둔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는 일종의 보습학원이었다.

기네스 팰트로와의 다정한 모습 출처: 팰트로 인스타그램



이처럼 어려서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대학 공부는 뒷전이었다. 결국 1998년 대학을 중퇴하고 다자간 파일공유(P2P·peer to peer)업체 ‘스카워’를 차린다. 2000년 여름 미 방송국 및 영화사 30여 개가 지적재산권 위반 등을 이유로 ‘스카워’에 2500억 달러(약 265조 원)란 천문학적 소송을 제기한다. 칼라닉은 2000년 9월 100만 달러를 배상해주고 파산을 선언했다.

2001년 그는 또 다른 P2P업체 ‘레드 스우시’를 창업한다. 초기에는 동업자와의 분쟁, 임금 체납, 탈세 문제 등으로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는 3년 간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해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매년 유명 IT 기업가들이 창업 지망생들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알려주는 ‘페일콘(failcon)’ 콘퍼런스가 열린다. 칼라닉은 2011년 페일콘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돈이 없으니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침대에 누워 게임만 했다. 반드시 이겨야 게임기 전원을 껐다. 나의 유일한 허세였다.”

연설하는 칼라닉



칼라닉은 스카워 시절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해 회사 문을 닫게 한 유명 방송사와 영화사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 회사가 살아났다. 그는 2007년 레드스우시를 1900만 달러(약 218억 원)에 매각한다.




○우버 창업

큰 돈을 쥔 칼라닉은 주거지를 LA에서 실리콘밸리로 옮겨 2년간 벤처 투자자로 활동한다. 2008년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간 그는 택시를 잡느라 30분을 허비했다. 극도의 짜증을 느낀 그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택시를 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동료 사업가 개럿 캠프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검색추천 전문 소셜미디어 ‘스텀블 어폰’의 창업자 캠프는 흔쾌히 25만 달러를 투자했고 둘은 2009년 3월 우버를 창업한다. 사실 우버의 밑그림은 캠프가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버의 첫 CEO이자 뛰어난 개발자인 라이언 그레이브스도 캠프가 데려왔다.

칼라닉과 개럿 캠프



우버는 2010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영업을 시작한다. 광대한 영토, 불편한 대중교통, 비싼 교통비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택시를 호출하고 가격까지 싼’ 우버의 출현은 혁신 그 자체였다. 밥그릇을 빼앗긴 택시업계가 극렬히 반발했지만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칼라닉은 본인이 CEO 자리까지 꿰차고 해외 공략을 진두지휘한다.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우버가 진출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격렬한 저항과 합법성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공격적인 사업 수완으로 이를 돌파했다.

현재 우버는 세계 66개국 528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프리미엄택시 우버X, 우버 보트, 헬리콥터, 자율주행차, 음식 배달 등 관련 산업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리프트·비아·겟(미국), 디디콰이디(중국), 카카오택시(한국), 그랩(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경쟁자가 생겨나고 있지만 칼라닉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우버가 아이폰이라면 경쟁사와 일반 택시는 평범한 휴대폰”이라는 말과 함께.




○바람 잘 날 없는 우버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몸을 불린 후폭풍일까. 우버는 올 들어 내내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1월 칼라닉이 트럼프 정권의 경제 자문위원을 맡자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기업답게 우버의 고객들도 반(反) 트럼프 쪽이 많다. 그가 5일 만에 자문 직을 사퇴했지만 이미 20만 명이 우버 앱을 지운 뒤였다.

소비자들의 ‘우버 앱 지우기’를 묘사한 사진



성희롱 문제도 속속 불거졌다. 2월 초 우버의 전직 여성 기술자 수잔 파울러는 “상사가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 상부에 보고했지만 인사부가 이를 덮는데 급급했다”고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아미트 싱할 선임 부사장도 전 직장 구글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뒤늦게 드러나 회사를 떠났다.

3월 중순에는 칼라닉의 전 애인 개비 홀스워스가 “그가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찾았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버 전·현직 직원들을 인용해 “해당 사례는 일회적이지 않고 우버 전체에 만연해있다”고 질타했다.

칼라닉 본인이 우버 운전자에게 막말을 내뱉는 동영상도 등장했다. 가격인하 정책에 불만을 토로하는 운전자에게 그는 비속어가 섞인 막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문을 쾅 닫았다. 이 동영상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우버와 칼라닉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은 더욱 커졌다.


▲ 운전자와 설전을 벌이는 칼라닉


우버가 ‘그레이볼(Grayball)’이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경찰 단속을 피했고 고객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관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버와 자율주행차 개발을 경쟁 중인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우버 측에 기술도용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애리조나 주에서는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사고까지 터졌다. 우버 2인자 제프 존스 사장, 브라이언 맥클랜던 부사장, 에드 베이커 부사장 등 핵심 임원들도 속속 회사를 떠났다.




○이미지 전환에 안간힘

불과 석 달 사이에 갖가지 악재가 터지자 우버는 28일 정보기술(IT) 분야의 소수 인종지원을 위해 300만 달러(약 33억 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백인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한 조직문화가 우버의 현 위기를 불렀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다.

우버 앱



같은 날 우버는 설립 후 8년 만에 최초로 사내 성별 및 인종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칼라닉은 “현재 우버 내 여성 직원 비율은 36%지만 지난해 신규 채용한 직원의 41%가 여성이었다. 여성과 소수인종 비율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물이며 나를 도와 회사를 다시 일으킬 경영자를 선임하겠다”고 변화 의지를 천명했다.

파일 공유와 교통 공유 등 ‘공유 경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억만장자가 된 칼라닉. 실패와 재기를 거듭하며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그는 어떤 전략으로 이번 위기를 돌파할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