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97주년/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 인터뷰]한국 청년실업-교육 제도에 대한 쓴소리와 해법
《 “내가 인생을 살며 느낀 건 일반 대중과 반대로 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라면 창업할 방법을 찾겠다. 통일된 한국에서 유망한 사업을 찾겠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짐 로저스(75)는 23일 ‘당신이 한국에서 막 대학을 졸업했다면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신(기자) 또래 한국인들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 정부 영역이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안심할 수 있고 수입이 안정적이니까. 하지만 나라면 일반 대중의 흐름을 벗어나겠다. 정부가 날 뽑아 주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왜 안 뽑힐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왜냐면 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니까!”라며 웃었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혜와 투자 감각으로 한국의 청년실업, 교육제도, 4차 산업혁명,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한국을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아프지만 해법은 명쾌했다. 싱가포르 자택에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화상전화 ‘스카이프’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
세계 3대 투자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짐 로저스가 23일 싱가포르 자택에서 인터넷 화상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동아일보 한기재 조은아 기자(오른쪽 아래 사진 왼쪽부터)와 인터뷰하고 있다. 로저스는 두 딸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2007년 미국 뉴욕에서 싱가포르로 이사했다. 스카이프 화면 캡처
“열세 살 된 첫딸에게 ‘이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뭘 하든 신경 안 쓴다. 내 말을 들은 딸이 ‘이렇게 숙제가 많은데?’라고 하더라. 하지만 일찍부터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어떤 게 돈 드는 일인지를 파악하고, 가게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데 필요하다. 한국의 10대들도 매주 몇 시간씩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하도록 교육 과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애들이 ‘진도를 못 따라가니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성적을 받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기에 적당한 직업은 뭔가.
―그밖에 다른 유망한 직업군은….
“이혼 담당 변호사다. 한국에서 이혼율이 치솟고 있다. 교육산업도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면 괜찮을 것 같다(농담 같지만 그는 매우 진지했다).”
―교육 시스템도 바뀌어야 할까.
“그렇다. 아이들이 음식, 재배 활동 등을 접하도록 교육을 바꾸라고 제안하고 싶다. 우린 모두 컴퓨터 교육을 받고 기술을 쉽게 접하지만 모두가 기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콩 기르는 법을 알면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그 일이 낫겠다고 말할 수 있다.”
“자립심 강한 젊은이들이 포기하거나 한국을 떠나지 않도록 창업 인센티브나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다. 인센티브를 받는 사람은 행동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사나 관료나 언론이나 그런 식으로 청년들을 독려하질 않는다. 규제도 과감하게 없애라.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사업하기가 한국에서보다 편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국은 모든 규제와 규범을 요구한다.”
―당신처럼 견문이 넓고 통찰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려면….
“젊은 한국인들이 더 많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청년들은 겁이 나서 세계를 더 많이 보려 하지 않는다. 파리에 가서 에펠탑 보고 오는 식의 여행은 더 이상 하지 말자. 크게 배울 게 없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또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나.
“모든 한국 사람이 러시아 동부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가 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러시아인들이 21세기의 훌륭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철도와 고속도로가 다시 건설되고 있다. 철로는 북한 항구 도시인 나선까지 뻗어 있다. 가 보면 통일에 (기여할) 완벽한 장소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전히 북한이 유망한 투자처라고 생각하나(그는 2015년, 통일을 바라보면 북한이 가장 좋은 투자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과 남한이 합치면 통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인구는 7500만 명이나 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데다 저렴한 노동력, 풍부한 자원을 갖게 된다. 당신은 적기에 적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에 제조기반을 두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에 투자하겠다.”
이 대목에서 로저스는 갑자기 예민해지며 “당신들 혹시 스파이가 아니냐”고 물으면서 기자들의 명함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중간에 화상 연결이 끊기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켜보고 있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투자가 관점에서 가까운 미래에 평화로운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보나.
“(남북 관료들이) 서로 소리만 지르지 말고 같이 앉아 대화를 한다면 평화 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북한에 청년들 여럿을 보내고 북한 청년들이 남한으로 와서 같이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면 여러 문제를 정말 순식간에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한은 여전히 핵을 개발하며 국제사회와 대치하고 있지 않나.
“6·25전쟁은 64년 전에 끝났다.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당신들 중 누구도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 당신들보다 내가 늙었는데 나조차도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도, 아시아에도, 세계에도 좋다.”
―1999년 한국을 2주 넘게 여행했는데 18년간 한국이 더 낙관적인 곳이 되었나.
“더 풍요로워진 것은 맞지만 더 낙관적이라고 말은 못하겠다. 북한과의 긴장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은 빚이 많기 때문이다. 1999년 당시 빚이 없었던 많은 한국인이 지금은 빚을 지고 있다.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을 땐 그다지 낙관적일 수 없다.”
―한국 조선업과 철강업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철강 같은 산업을 부활시키려 애쓰지 않겠다. 이런 산업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농업이든 관광업이든 컴퓨터 관련 산업이든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하려 노력하겠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같은 교통 분야 말이다. 평화만 유지되면 부산에서 베를린까지 철로가 놓인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한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정직함은 당연히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를 하는 능력(the ability to think outside the box)’이 필요하다. 매년 예정된 ‘전쟁 게임’은 끝내자. 지난 60여 년간 반복해 온 (대북정책) 방식은 한반도에 별로 도움이 안 됐다. 대선 후보 중 두 사람 정도가 새롭게 사고하는 사람인 것 같다. 좀 다른 질문을 한다. 지난 60여 년간 아무도 못했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후보들을 보고 누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지 봐라.”
―그 두 사람이 누군가.
“기자라면 누군지 알 거 아니냐. 내가 말하면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된다(집요하게 물었지만 그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꿈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난 평생 아이를 원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왜 멍청하게 애를 낳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애를 낳고 내가 100% 틀렸다는 걸 알았다. 나의 꿈은 두 딸이다.”
그에게는 여덟 살 난 둘째 딸이 또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늦은 밤인데도 그는 실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린 두 딸을 건강하게 잘 키우고 해외로 비행기 타고 강연을 다니기 위해서”라고 했다.
:: 짐 로저스는 ::
본인이 밝힌 현직은 모험가이자 작가. 1964년 예일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 스펙으로 22세 때 미국 경제의 중심지인 월가에 첫 직장을 구했다. 주식과 채권 등 금융시장을 배우고 뜬금없이 영국으로 떠나 1966년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 경제학 학사 학위를 땄다. 월가로 다시 돌아와 1973년 헤지펀드계 대부인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설립했고 10년간 4200%의 수익률을 올렸다. 1980년 38세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뒤 116개국을 여행했다. 현재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강연을 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은아 achim@donga.com·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