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前대통령 영장심사]역대 최장 8시간40분 피의자 심문
법정 피의자석에 앉은 박근혜 前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엔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사 2명과 검찰 측 검사 6명이 참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왼쪽에 검사 4명이 앉아 판사에게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박 전 대통령 뒤쪽 방청석에 검사 2명이 앉아서 서류 검토 작업을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박 전 대통령은 강 판사의 질문에 답하면서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 조사에서 간혹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흥분했던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영장심사에서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강 판사에게 직접 소명하기 위해 변호인단 가운데 유영하 변호사(55·24기)와 채명성 변호사(39·36기) 2명만 법정에 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 뇌물 혐의 놓고 치열한 다툼
“전직 대통령입니다.”(박 전 대통령)
오전 10시 반 영장심사가 시작되자 강 판사는 정면 피의자석에 앉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이름과 나이, 주소, 직업 등 인적사항을 물었고 박 전 대통령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박 전 대통령 왼편에는 한 부장과 이 부장 등 검사들이 앉았고, 오른편에는 유 변호사와 채 변호사가 자리했다. 먼저 한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의 298억 원 뇌물수수 등 범죄 혐의 13가지를 비롯한 구속영장 청구 요지를 설명하며 “피의자가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며 사건 관련자들과 입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등에서 부정한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 “대가성 있는 돈을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유 변호사는 “검찰 조사와 영장심사에 충실히 응하고 있다”며 “파면 결정으로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국가지도자를 구속까지 시키는 건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유 변호사와 채 변호사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204억 원은 두 재단에 자발적으로 낸 출연금이라 뇌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최 씨 등이 삼성에서 지원을 받는 등 사익을 챙겼다고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 측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측에 두 재단 출연을 요구할 때 경영권 승계 청탁이 오간 정황이 있어서 ‘제3자 뇌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박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의 마지막 절차인 최후진술에서 차분하게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포토라인 그냥 지나친 朴
이날 영장심사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9일 전 검찰에 소환돼 포토라인에 섰을 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오전 10시 19분 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한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에서 내려 청사 내 보안검색대를 지나 통제구역으로 들어갈 때까지 취재진의 질문에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포토라인에 멈춰 서지도 않았다. 앞서 21일 검찰에 소환돼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설 땐 포토라인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말했지만 이날은 그마저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경호원 12명에게 둘러싸인 채 영장심사가 열리는 321호 법정으로 향하는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을 마중하거나 차를 대접하는 등의 예우를 하지 않았다.
이날 영장심사에서 검찰은 12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 기록을 강 판사에게 제출했다.
영장심사가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정문을 통해 나온 박 전 대통령 측 두 변호사는 “영장심사를 잘 받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받았다”고 짧게 대답했다. 영장심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심사를 마친 뒤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돌아왔다.
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