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규범 어디에도 없는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부총리-韓銀총재 너무 쉽게 언급 미국 보호주의 비판한 중국… 압력 없었다는 일본과 큰 차이 경제적 국익 지키기는커녕 품격도, 전략도 바닥 드러냈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환율정책의 양대 축인 기재부와 한은 두 수장의 이런 발언은 매우 유감이다. 교역이 국가경제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 교역에 환율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책 수장의 공공연한 언급은 더더욱 적절치 못하다. 첫째, 국제규범 어디에도 ‘환율조작국’이란 말이 없다. 이른바 BHC법이라고 불리는 ‘무역활성화 및 진작법’ 제7절 701조에는 ‘일정 요건을 갖춘 주요 교역 대상국에 대하여 심층분석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을 뿐 ‘환율조작국’이란 불명예스러운 단어는 없다.
둘째, 언론은 둘째치고서라도 국가 정책 수장들이 그 어디에도 없는 ‘환율조작국’이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G20 회의 이후 중국 재무장관은 정책적 불확실성과 선진국 일각에서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한다고 했을 뿐 환율 조작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중국의 환율 조작 혐의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맹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조차 ‘심층분석 및 평가 중’에 있다고만 말할 뿐 환율조작국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G20 회의가 끝난 후 아소 다로 재무상은 “우리는 환율에 관한 주요 7개국(G7) 및 G20 합의문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므누신으로부터 그 어떤 압력도 받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로지 우리 기재부 장관과 한은 총재만이 G20 회의 직후 환율조작국의 가능성을 부풀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만에 하나 미국이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해도 그 부당성과 불법성을 강하게 반박해야 옳다. 그러기는커녕 기재부 수장이 앞장서 ‘양자 협의’를 예단하고 나아가 ‘양자 협의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해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방안이라 설명했다. 상대를 향해 그렇게 지정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다섯째, 정부와 외환당국은 심층분석 대상국 지정에 따른 경제 제재 조치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BHC법에 규정된 제재는 대미투자 불허, 정부 조달 참여 제한 및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압력 감시 요청 등으로 겉으로는 영향이 작아 보일 수가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제재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이면 그들은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카드 같은 더 강한 조치를 들이밀 가능성이 있다.
여섯째, 이러한 정책당국의 입장에 편승해 진행되는 최근의 지나친 원화 강세(환율 하락)에 대해 “큰 우려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당국 스스로 외환시장의 안정을 크게 무너뜨리는 일이다. 앞으로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 아닐 수 없다.
환율조작국의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부풀려 해석하고, 나아가 상대방의 제재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최고 정책 수장으로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전적으로 미국 편에 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다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다 드러내는 가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같은 G20 회의를 마치고서도 환율 조작에 관련된 언급은 전혀 입에 담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비판한 중국이나 일절 압력이 없었다는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나 유감스럽다.
신세돈 객원논설위원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