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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의 取中珍談]중국 외교 용어 ‘겉말과 속뜻’

입력 | 2017-04-01 03:00:00


하종대 논설위원

“미국은 충돌과 대립을 피하고 상호존중과 합작공영의 정신에 입각해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중략)…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충돌과 대립을 피하고 상호존중과 합작공영(不충突不對抗, 相互尊重, 合作共영)’이라는 14자 한자다.

상호존중은 ‘간섭 말라’는 뜻

‘상호존중, 합작공영’이라는 8자엔 대만 및 티베트 독립 문제나 남중국해 영토 갈등은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문제니 절대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 에둘러 담겨 있다. 중국에서 핵심 이익이란 전쟁을 해서라도 관철해야 하는 국가 이익을 말한다. 나아가 양국은 주요 2개국(G2) 국가이니 국제사회 이슈에 공동 대처하자는 취지로 중국이 그동안 미국에 줄기차게 요구한 ‘신형 대국관계’의 핵심 문구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은 중국의 이런 뜻을 간파하고 ‘不충突不對抗’은 수용했지만 ‘相互尊重, 合作共영’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석유업에 종사해 온 틸러슨 장관은 시 주석과 왕 부장이 회담에서 제기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했다. 중국 언론은 틸러슨의 발언을 ‘미국 새 정부의 변화된 입장’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단 한 번도 남중국해 군도(群島)를 중국 영토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처럼 중국의 외교 용어엔 겉말과 속뜻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의 정상회담 뒤에 발표되는 언어의 속뜻을 모르면 사안을 곡해하거나 엉뚱하게 해석할 수 있다. ‘坦率交換(탄솔교환)’은 직역하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의견 차가 매우 컸다는 뜻이다. ‘嚴重關切(엄중관절)’은 엄중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만, 외교 용어로는 ‘아마도 곧 간섭할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2000년 ‘마늘 파동’ 때 중국 정부가 무역 보복 직전 쓴 말이 ‘關切’이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공식 입장은 ‘강렬 반대(强烈 反對)’다. 이를 두고 ‘반대하라지. 누가 뭐래?’로 반응한다면 함의를 크게 잘못 읽은 것이다. 중국학자들에 따르면 이는 중국 외교부가 반세기 이상 사용한 22종의 외교적 언어 강도 가운데 15, 16번 사이로 강한 불만의 표현이다. 15번째는 ‘保留作出進一步反應的權利(추가 반응을 보류한다)’이니 ‘강렬 반대’의 속뜻은 곧 뭔가 (상대에게 좋지 않은)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이미 사드 보복을 시작했다.

암시와 코드 읽을 줄 알아야

모든 나라의 외교 언어엔 암시와 코드가 숨어 있다. 미국과 일본도 실생활 언어와 외교 용어는 함의가 다르다. 외교관의 perhaps(아마도)는 No(아니다)라는 뜻이다. study(연구)는 ‘검토하겠다’가 아니라 ‘거절하겠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에 발린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를 액면대로 믿고 북핵 협조를 기대했다면 중국의 외교를 몰라도 너무 모른 것이다. 지난 방한 때 사실과 차이가 큰 틸러슨의 ‘만찬 불발 해명’이 더욱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중국 외교 용어 ‘겉말과 속뜻’ 이렇게 다르다

1. 亲切友好交谈(친절우호교담): 친밀하게 우호적인 회담을 가졌다. ☞ 겉말과 속뜻이 동일

2. 坦率交谈(탄솔교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 의견차가 컸다.

3. 交换了意见(교환료의견): 의견을 교환했다. ☞ 각자가 자기 얘기만 했고, 어떤 합의도 이룰 수 없었다.

4. 充分交换了意见(충분교환료의견):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다. ☞ 쌍방이 어떤 합의에도 이를 방법이 없었다. 아주 심각하게 다퉜다.

5. 增进双方了解(증진쌍방료해): 쌍방이 서로 이해를 증진했다. ☞ 쌍방의 의견 차가 너무도 컸다.

6. 会谈是有益的(회담시유익적): 회담은 유익했다. ☞ 쌍방의 목표 차이가 너무 크고 멀어서 앞으로 쌍방이 이 문제를 가지고 협의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나기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다.

7. 我们保留态度(아문보류태도): 우리는 태도 표명을 보류했다. ☞ 우리는 상대 주장이나 요구를 거절했다.

8. 尊重(존중): 존중한다. ☞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9. 赞赏(찬상): 칭찬하며 높이 평가하다. ☞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10. 遗憾(유감): 유감이다. ☞ 불만이다.

11. 不愉快(불유쾌): 유쾌하지 않다. ☞ 격렬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12. 表示极大的愤慨(표시극대적분개): 매우 큰 분개를 표시했다. ☞ 정말 어쩔 수가 없는 나라네.(더 이상 대화로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

13. 严重关切(엄중관절): 엄중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 ☞ 아마도 곧 간섭할 가능성이 많다.
14. 不能置之不理(불능치지불리): 절대로 묵과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 ☞ 상대의 희망과 다른 간섭을 곧 할 것이다.

15. 保留作出进一步反应的权利(보류작출진일보반응적권리): 진일보한 반응을 내놓을 권리를 보류했다. ☞ 우리는 곧 보복할 것이다.

16. 我们将重新考虑我们之间的立场关系(아문장중신고려아문지간적입장관계): 우리는 앞으로 양측의 입장 관계를 다시 고려할 것이다. ☞ 우리는 이미 본래의 우호정책을 폐기했다.
17. 拭目以待(식목이대): 눈을 비비며 간절히 기다리다. ☞ 최후의 경고다.

18. 请与x年x月给予答覆(청여x년x월급여답복) 모년 모월까지 답변을 달라. ☞ 경고한 날짜까지 희망하는 답변이 오지 않으면 전쟁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

19. 这是不友好的举动(저시불우호적거동): 이는 우호적인 행동이 아니다. ☞ 이는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는 행동이다. 아마도 전쟁을 야기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20. 请悬崖勒马(청현애륵마): 낭떠러지에 이르렀으니 말고삐를 돌려라. ☞ 너 한 번 무력으로 당해 볼래?

21. 是可忍孰不可忍(시가인숙불가인): 이를 참는다면 뭘 못 참겠는가.(반어법) ☞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곧 무력 대응할 것이다.

22. 勿畏言之不预也(물외언지불예야):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관(棺)을 준비해라.

  중국학자들에 따르면 위에 설명한 22종의 외교 용어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1번 이상 반드시 사용한 적이 있는 단어라고 한다.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래로 내려올수록 상대 국가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점차 올라간다. 조사 결과 14번 이후의 용어들은 사용한 적이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20번은 외교상 최후의 경고다. 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尖閣·센카쿠 열도) 문제로 일본과 다툴 때 이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 21번과 22번은 상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곧바로 전쟁에 돌입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1962년 9월 22일 런민일보가 ‘是可忍,孰不可忍’이라는 사설을 게재한 뒤 1개월이 채 안 돼 중국은 인도와 전쟁에 돌입했다. 또 1978년 12월 25일엔 ‘我们的忍耐是有限度的(아문적인내시유한도적·우리의 인내는 한도가 있다-가만있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사설이 런민일보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다. 중국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외교 어휘와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사설 제목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