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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의 오늘과 내일]敗者 안희정이 남긴 것

입력 | 2017-04-04 03:00:00


정용관 정치부장

39.7%….

유력 대선 주자의 지지율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97주년(4월 1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9 대선의 시대정신을 물었더니 ‘정권교체를 통한 적폐 청산’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비율이다.

그중 눈에 확 띄는 건 30대다. 무려 55.9%가 대선 시대정신으로 국민통합도, 미래비전도 아닌 정권교체를 택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진보 응답자의 6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전 대표의 확고부동한 지지층이었음은 물론이다.

문 전 대표는 원내 5당 유력 후보 중 64세로 가장 나이가 많다.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꼰대’ 같은 이미지도 풍긴다.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말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념적 좌표는 ‘진보’이지만 일상적 삶에서의 사고방식은 ‘보수적’이라는 게 주변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런 문 전 대표에게 젊은층이 50% 이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문 전 대표와 20, 30대를 잇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고르라면 ‘분노’라고 답하고 싶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세상, 확 뒤집어지길 바라는….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정권교체의 아이콘’으로 성공적 자리매김을 한 문 전 대표의 당내 경선 승리는 출발부터 예고됐던 게임이었다. 경선 룰 논란을 떠나 기울어진 경선 운동장이었다. 이 와중에 외곽에서나마 문 전 대표를 나름대로 위협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관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돌이켜 보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을 제치고 2위를 유지한 안 지사는 ‘아마추어 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현안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미리 공약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나 준비가 덜 된 부적격자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밀한 준비도 큰 세력도 없이 대선 판에 뛰어들었기에 진영과 패권 논리에 갇힌 기존 여의도식 언어가 아닌 상식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지지층의 충성도와 결집력이 약해 그대로 표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아마추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문 전 대표의 본선 전략 중 하나는 손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안 지사 지지층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이 대목에서 2주 전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떠오른다. 대선주자가 “질렸다”는 표현이 담긴 글을 새벽 2시에 올린 데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의문이 풀렸다. 전날 밤 MBC TV토론 녹화 직후 카메라가 돌고 있지 않은 공간에서 문 전 대표가 안 지사에게 “대체 왜 그리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느냐. 캠프 단속 잘하라”는 취지의 질책성 항의를 했고, 이에 안 지사도 발끈했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 “질렸다”고 할 때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종 경선 결과 발표 후 눈시울을 붉힌 안 지사는 “졌지만 이긴 선거”라며 애써 자위했다고 한다. 한 치의 변수도 만들지 않기 위해 경선 승리에 다걸기를 한 문 전 대표로선 안 지사의 ‘정치적 승복’ ‘감정적 승복’을 이끌어내는 게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히 골육상쟁, ‘노무현의 상주’와 ‘노무현의 상속자’의 문제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넘어, 이분법적 진리관을 넘어 협치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안 지사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다. 문 전 대표는 안 지사를 온전히 품을 수 있을까.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의 ‘좌희정’이 될 수 있을까.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