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정치부장
유력 대선 주자의 지지율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97주년(4월 1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9 대선의 시대정신을 물었더니 ‘정권교체를 통한 적폐 청산’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비율이다.
그중 눈에 확 띄는 건 30대다. 무려 55.9%가 대선 시대정신으로 국민통합도, 미래비전도 아닌 정권교체를 택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진보 응답자의 6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전 대표의 확고부동한 지지층이었음은 물론이다.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정권교체의 아이콘’으로 성공적 자리매김을 한 문 전 대표의 당내 경선 승리는 출발부터 예고됐던 게임이었다. 경선 룰 논란을 떠나 기울어진 경선 운동장이었다. 이 와중에 외곽에서나마 문 전 대표를 나름대로 위협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관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돌이켜 보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을 제치고 2위를 유지한 안 지사는 ‘아마추어 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경제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현안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미리 공약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나 준비가 덜 된 부적격자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밀한 준비도 큰 세력도 없이 대선 판에 뛰어들었기에 진영과 패권 논리에 갇힌 기존 여의도식 언어가 아닌 상식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지지층의 충성도와 결집력이 약해 그대로 표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아마추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문 전 대표의 본선 전략 중 하나는 손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안 지사 지지층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이 대목에서 2주 전 안 지사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떠오른다. 대선주자가 “질렸다”는 표현이 담긴 글을 새벽 2시에 올린 데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의문이 풀렸다. 전날 밤 MBC TV토론 녹화 직후 카메라가 돌고 있지 않은 공간에서 문 전 대표가 안 지사에게 “대체 왜 그리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느냐. 캠프 단속 잘하라”는 취지의 질책성 항의를 했고, 이에 안 지사도 발끈했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 “질렸다”고 할 때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종 경선 결과 발표 후 눈시울을 붉힌 안 지사는 “졌지만 이긴 선거”라며 애써 자위했다고 한다. 한 치의 변수도 만들지 않기 위해 경선 승리에 다걸기를 한 문 전 대표로선 안 지사의 ‘정치적 승복’ ‘감정적 승복’을 이끌어내는 게 당면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히 골육상쟁, ‘노무현의 상주’와 ‘노무현의 상속자’의 문제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넘어, 이분법적 진리관을 넘어 협치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안 지사의 가치와 관련된 문제다. 문 전 대표는 안 지사를 온전히 품을 수 있을까.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의 ‘좌희정’이 될 수 있을까.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