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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강 건너기’ 문제와 인간의 굴레

입력 | 2017-04-0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을 늑대와 양의 ‘강 건너기’ 문제를 기억할 것이다. 농부와 늑대, 양, 배추가 모두 안전하게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의 어느 쪽에도 늑대와 양 혹은 양과 배추가 같이 있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늑대는 양을 잡아먹을 수 있고, 양은 배추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와 배로 건널 수 있는 수는 둘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뒤에 남아 있는 늑대와 양을 고려해야 한다. 관건은 최단 거리로 건너야 한다는 점이다.

‘강 건너기’ 문제는 누군가에겐 즐거운 퍼즐로, 또 다른 이에겐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이 문제는 그동안 여러 버전으로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늑대 3마리와 양 3마리가 강을 건너는데, 늑대의 수가 한쪽에 더 많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럴 경우 늑대가 양을 잡아먹을 수 있다. 적어도 늑대와 양의 수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TED-Ed’에 1000만 조회 수를 넘긴, 스마트 세대를 위한 ‘강 건너기’ 문제가 있다. 이참에 논리력을 향상시키는 수학 퀴즈 하나 풀어보자. 문제의 조건은 대략 이렇다. 저기 멀리서 좀비들이 쫓아온다. 좀비들은 17분 안에 도착할 예정이다. 다행히 도망가는 이들 앞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그런데 다리는 간신히 2명만 지탱할 수 있다. 특히 어두워서 반드시 손전등 1개를 갖고 건너야 한다.

연구원인 나를 포함해 4명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야 한다. 하지만 다리 반대편으로 건너는 시간은 각각 다르다. 나는 1분, 조교는 2분, 연구실 관리자는 5분, 교수는 10분 걸린다. 강조하건대 다리는 2명만 건널 수 있고 꼭 손전등을 들고 가야 한다. 단, 손전등은 1개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손전등을 들고 교수와 함께 건너면 교수가 느리기 때문에 어쨌든 10분이 걸린다. 또한 조교가 손전등을 들고 관리자와 건너면 관리자가 느리기 때문에 적어도 5분이 걸린다. 17분 안에 모두 안전하게 좀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풀려면 누군가 1명은 다시 손전등을 갖고 되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좀비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이 문제는 놀랍다. 동영상이 참 재미있기 때문이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 게임에 민감한 요즘 학생들의 취향에 딱 맞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도 귀엽고 절묘한 사운드와 스토리는 수학 문제에 긴장감을 더한다. ‘TED-Ed’의 논리 문제들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 또한 생각할 거리와 더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학습 재료도 링크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8분이 최솟값이다.

좀비 문제에선 두 가지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첫째, 가장 빠른 두 명이 함께 갔다가 이 둘 중에 한 명이 손전등을 갖고 되돌아감으로써 시간을 아낀다. 둘째, 가장 느린 두 명을 같이 보냄으로써 시간을 절약한다. 예를 들어 만약 군대에서 수색과 정비가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면 동시에 진행해 시간을 절약해 보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리더라면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혹은 가장 빠른 두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그런 업무를 마무리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해 볼 수 있다.

강 건너기 퀴즈는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앨퀸(735∼804)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그는 목동이 자칼과 염소, 무화과 잎(염소의 먹이)을 강 건너로 옮기는 문제를 고안했다. 이 문제에서 목동은 한 번에 2개(마리)를 운반할 수 있었다.

16세기엔 베네치아의 수학자 니콜로 타르탈리아(1499∼1557)가 강 건너기 퀴즈를 고안한다. 3쌍의 신혼부부가 등장하는데, 신부는 신랑 이외의 남자와 남아 있으면 안 되는 조건이다. 19세기에는 3명의 식인종과 3명의 선교사가 나온다. 식인종이 한쪽 강가에 선교사보다 더 많이 남아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신랑 신부나 선교사와 식인종 문제는 성과 인종차별주의적인 색채를 분명 띠고 있다. 수학이 시대적 문화와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한계이다.

최단 거리와 시간 내에 강을 건너야만 하는 숙명은 인간의 굴레이다. 인류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강은 위험과 죽음, 경계와 한계, 장애와 편견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 건너기’ 문제는 농부와 늑대에서 연구원과 좀비 등으로 진화해 왔다. 다음엔 테러리스트나 인공지능 로봇 혹은 외계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어떤 형식이든지 해결 방법은 문제만큼 혹은 그보다 더욱 많다는 사실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