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잡채인 ‘디미방 잡채’. 각종 채소와 꿩고기 등을 섞어 먹었다.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되신 어머니는 늘 남편 장례식장의 육개장을 곱씹었다. 평소 조문을 다녀오시면 상가 음식을 마뜩잖아 하셨다. “무슨 육개장이 멀건 게 아무 맛도 없더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육개장을 끓여 온 어머니는 육개장에 관한 한 대단한 미식가다.
어머니는 두태(豆太) 기름을 썼다. 두태는 소 콩팥이다. 콩팥에 붙어 있는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고추기름을 만들었다. 이제 두태 기름은 사라지고 있다. 모르는 이도 많다. 두태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비자들이 동물성 기름을 꺼린다. 매번 콩팥 기름을 구하기도 번거롭다. 육개장 고추기름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엉터리다. 초상은 돌아가신 분의 혼령을 모셔서 편하게 보내 드리는 행사다. 혼령을 부르는 초상집에서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니, 귀신도 곡할 노릇이다. 조상의 혼령은 육개장의 붉은색으로 물리칠 대상이 아니다. 이래저래 육개장은 뒤틀렸다. 말린 고사리, 말린 토란대, 숙주나물 등을 넣은 맛있는 육개장은 사라졌다. “육개장에 황소고기를 썼다”고 하면 “질겨서 어떻게 먹어요?”라고 되묻는다. 예전에 그 많았던 ‘질긴 황소고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당면 잡채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당면이 잡채의 주인 노릇을 하는 사이, 우리의 채소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음식디미방’(장계향·1670년 무렵 기술)의 잡채는 꿩고기와 열 종류의 채소가 자리하는 ‘여러 채소 모둠 쟁반’이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오신반(五辛盤), 오신채(五辛菜), 오훈채(五훈菜)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오신채는 이른 봄에 나오는 움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 싹 등을 모은 채소 모둠이다. 향이 강하니 오훈채라고도 불렀다. 오신채를 담은 쟁반이 오신반이다. 우리 선조들은 입춘 무렵 오신반을 나눠 먹었다. 이제 잡채도 오신반도 잃었다. 아름다웠던 채소 음식은 사라졌다. 왜간장으로 색깔을 낸, ‘당면이 주인공인 잡채’를 먹고 있다.
연포탕(軟泡湯)도 마찬가지. 거품을 의미하는 ‘포(泡)’는 두부를 뜻한다. 연포는 연두부, 부드러운 두부다. 조선시대 조포사(造泡寺)는 왕릉 인근에서 두부를 비롯하여 각종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사찰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연포탕이라 부르는 음식은 ‘낙지탕’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어떤 경로로 연두부탕에 낙지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두부는 빠지고 낙지만 덩그렇다. 우리는 ‘두부 없는 두부탕’을 먹고 있다. 낙지연포탕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두부탕에서 두부가 빠졌으니 설명하기 모호한 음식이 되었다. 더하여 다산 정약용이 기록한 네모나게 썬 두부를 꿰서 넣고, 닭고기와 닭고기 국물이 들어간 ‘프리미엄 두부탕’도 잊었다.
이름은 사물을 규정한다. 이름은 정체성이다. 음식 이름에 연연하는 것은 한식이 더 이상 우리만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식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먼저 한식의 정체성부터 찾아야 한다. 제대로 된 이름부터 정해야 한다. 스토리텔링, 식품 산업화, 한식 세계화는 그 다음 일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