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하지만 그런 우 전 수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전혀 다른 모습이 있다. 그는 검사 시절 가끔 법무부의 인사 담당 부서인 법무부 검찰국에 손 편지를 썼다. 함께 일한 후배 검사를 중용해 달라고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비(非)서울대 출신, 호남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 주류와 거리가 멀었던 A 검사는 우 전 수석의 손 편지 덕을 본 경우다. A 검사는 특별수사 분야에 재능이 뛰어나 종종 큰 사건 수사에 차출되곤 했지만, 정작 인사 철에는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지방을 전전했다. 우 전 수석은 법무부에 “A 검사가 자신이 한 일과 능력에 비해 홀대받았다”고 호소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A 검사는 직후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 났다.
이런 ‘우병우 사단’이 부정적인 의미로 바뀐 건 지난해 7월부터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정부 권력기관 도처에 널려 있는 ‘우병우 사단’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전 수석이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인사를 본인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11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 도중 본회의장 대형 스크린에 ‘우병우 사단’이라며 검찰 간부 12명의 실명과 직책을 띄웠다. 검찰은 당시 박 의원이 공개한 명단은 ‘근거가 없는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명단에는 A 검사를 비롯해 평소 ‘우병우 사단’이라고 자처했던 이들의 이름은 한 명도 없었다.
이 명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조금씩 버전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이 명단이 차기 정부에서 일종의 살생부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우 전 수석의 책임이 크다. 검찰에서는 그간 우 전 수석이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 일선 검찰청에 직접 전화를 건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또 우 전 수석이 친한 간부들을 요직에 배치해 사실상 수사를 지휘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우 전 수석과 가까운 이들은 무조건 솎아내자는 주장은 지나치다. 가령 우 전 수석과 가깝기로는 특검에서 맹활약한 윤석열 부장검사도 손가락 안에 든다. 윤 부장검사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중 ‘항명 파동’으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을 때, 당시 변호사이던 우 전 수석은 윤 부장검사에게 저녁을 대접하며 위로했다. 특검이 앞서 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뒤졌을 때에는, 윤 부장검사가 우 전 수석에게 안부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작정 ‘우병우 사단’을 제거하자는 주장은 자칫 멀쩡한 검사들을 쫓아내고 검찰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검찰의 인적 쇄신 기준이 우 전 수석과의 친소 관계여서는 안 된다. 법과 정도에 어긋난 수사를 한 게 그 기준이 돼야 한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