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초반에 나는 이런저런 방황 끝에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디자인 회사였는데 그 무렵 붐을 타던 컴퓨터그래픽으로 건축 설계나 인테리어 작업, 애니메이션이 필요한 광고 제작을 하던 데였다. 디자인 학원을 다니다 채용된 나는 제작팀에서 도면 작업을 돕기도 했지만 도무지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아무튼 회사는 오픈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고, 초대한 손님들에게 줄 선물도 마련했다. 광고주들에게 회사를 홍보하던 컴퓨터그래픽 영상 중, 촛대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려 꺼질 듯하다가 다시 환하게 타오르는 장면을 프린트한 머그잔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회사명과 로고가 새겨진.
어머니께서 올봄엔 더 이상 안 쓰는 물건들은 큰맘 먹고 버리겠다고 하시더니 주방 선반도 거의 비웠는지 깨끗해 보인다. 그런데 컵들을 놓아둔 앞 칸에 머그잔 하나가 눈에 띈다. 이십칠팔 년 전, 회사를 그만둘 때 갖고 나왔던. 단지 그 시절의 무생물을 슬쩍 보기만 했을 뿐인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사물에 관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이별’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바로 저런 물건을 정리해야 할 때 필요한 감정인 걸까.
작업실로 와서 선반을 열어보니 여기에도 머그잔이 여러 개 있다. 한두 번밖에 안 쓰고 넣어둔 것들이 대부분이며 혼자 쓰기에는 개수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할 잔들도 몇 개나 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흑백 사진 밑에 네 권의 책 제목이 영문으로 프린트된 잔.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이렇게 제목만으로도 여전히 좋은.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는 책만 읽으면서 지냈다. 찾지 못한 꿈과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몇 년 그렇게. 그러다 뒤늦게 대학에 갔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조카들이 여행지에서 사다 준 머그잔에 레몬 물을 부어 마시면서 지난주에 새로 나온 책 한 권을 읽는 중이다. 그 책에서 아프리카 작가 치누아 아체베가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저절로 끌어들이고,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우리를 좋은 이야기로 인도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좋은 이야기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뭔가 깊이 생각해야 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 걷기나 청소하기 같은.
그런데 이런 잔은 정말 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뉴시티스쿨’이라는 학교로 강연을 갔다가, 새싹 같은 초등학생들과 책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선물로 받아왔던 학교 머그잔. 수프 그릇으로 써도 될 만큼 커다란 남색 잔에 이렇게 써 있다. ‘아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