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면발’ 이어 새기준 찾기 사활

국내 라면 제조 회사들은 근래 인기를 끈 굵은 면발을 이을 새로운 면발의 기준을 찾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농심 연구소 면개발팀 직원들이 개발 중인 면을 시식하고 있다. 농심 제공
지난해 농심 연구소 면개발팀 이승열 과장은 ‘너구리’ 면발을 놓고 씨름했다. 국물 없는 라면 수요가 늘면서 농심에선 너구리를 볶음면으로 내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너구리와 달리 볶음면은 면발을 5분 끓인 뒤 다시 30초간 볶아야 하기 때문에 물에서 건져도 퍼지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국물이 없으므로 면발의 감칠맛과 씹는 맛이 더 중요했다.
이 과장은 1년간 밀가루와 감자전분 비율, 면발 굵기를 수백 번씩 바꾼 끝에 너구리 면발보다 10% 굵은 2.3mm 굵기의 ‘볶음너구리’ 면발을 완성했다. 올해 2월 말 출시된 농심 볶음너구리는 한 달 만에 1000만 개 넘게 팔렸다. 농심은 볶음너구리 생산 라인을 기존 안성·구미공장에 더해 안양공장까지 추가한다고 5일 밝혔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국내 ‘라면 4사’는 올해도 면발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볶음면·비빔면 등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중화풍 라면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굵은 면발’의 인기를 대체할 새로운 면발 찾기에 나선 것이다.
국내 라면 면발 변천의 역사는 1981년 ‘사발면’으로 처음 등장했던 농심 컵라면 ‘육개장’에서 출발한다. 1963년 국내 첫 라면인 삼양식품의 ‘삼양라면’ 출시 이후 라면 업계는 봉지 유탕면만 20년 가까이 유지해 오고 있었다. 물만 부어도 때맞춰 익고 잘 퍼지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면이 필요했다. 당시 농심 면개발팀은 해외 논문과 서적을 뒤져 국내엔 없던 특수 전분 기술을 찾아냈고, 긴 실험 끝에 육개장을 내놓을 수 있었다.

비빔면은 여름철 가정에서 즐겨 먹는 비빔국수에 착안해 소면과 유사하고 찰기 있는 가는 면발로 나와 하절기 대표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한 가지 종류의 밀가루로 면발을 만들던 라면 업체들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비로소 각 제품 특성에 맞게 강력분·중력분 등을 조합한 ‘전용분’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팔도 ‘꼬꼬면’을 필두로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이 지나간 뒤 면발의 변신은 더욱 과감해졌다. 2015년 농심 ‘짜왕’과 오뚜기 ‘진짬뽕’ 등 중화 라면의 성공은 3mm 전후의 굵은 면발 시대를 열었다. 중식당의 면을 재현하기 위해서였지만 처음엔 겉만 익고 속은 덜 익는 등 실패가 이어졌다. 짜왕의 경우 면발에 다시마를 넣으면서 이후 다양한 식재료 추출물 배합의 시초가 됐다. 비슷한 시기 인기를 끈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은 기존 삼양라면보다 더 굵게 만들고 식물성 전분을 넣어 쫄깃한 맛을 살렸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