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음악과 감성 돋는 목소리, 선글라스 너머로 내뿜는 오라. 그 특별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음원 차트를 올 킬한 자이언티와 마주했다.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다. 무대 위에선 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가수 자이언티(28·김해솔)가 얼굴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나타날 줄이야. 기자의 빈약한 상상력을 깨뜨리다니 과연 자이언티답다.
데뷔 7년 차인 자이언티는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가수로 꼽힌다. 2월 1일 발매된 두 번째 정규 앨범 에 수록된 타이틀곡 ‘노래’와 또 다른 수록곡 ‘콤플렉스’는 곧바로 국내 모든 음원 차트의 정상을 석권했다. 그전까지 두 달 동안 음원 차트를 점령했던 드라마 <도깨비> 삽입곡들도 ‘음원 깡패’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자이언티가 이전 소속사인 아메바컬쳐에서 YG엔터테인먼트 산하 더블랙레이블로 이적한 후 처음 선보인 이번 앨범에는 ‘영화관’ ‘코미디언’ ‘미안해’ ‘나쁜 놈들’ ‘바람(2015)’까지 7곡이 담겼다. 모두 음원 차트 상위에 랭크돼 있다. ‘미안해’에는 빈지노, ‘콤플렉스’엔 빅뱅의 지드래곤이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선글라스를 안 쓰고 다녀도 사람들이 알아보나요.
예전에는 잘 못 알아봤는데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안경 안 쓴 모습이 나간 후에는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어요. 아이돌 가수들은 본인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쓰는데 저는 선글라스를 끼어도 알아보고, 마스크를 쓰면 그 사진을 SNS에 올려서 알아보더라고요. 어디로도 숨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죠(웃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뭔가요.
데뷔 초 다양한 준비를 했어요. 생판 처음 보는 놈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설득력이 없잖아요. 옷이 부족해 똑같은 의상을 입고 다섯 번 정도 공연을 하면서 몸을 현란하게 움직여 봤는데 효과적이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 한번은 차에 아버지 선글라스가 있기에 그걸 쓰고 무대에서 엄청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가만히 서 있었어요. 그랬더니 반응이 터지더라고요.힙합 공연을 하는데 안 움직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때부터 선글라스와 부동자세가 제 트레이드마크처럼 됐죠(웃음).
이번 앨범 제목 모양(OO)도 안경을 닮았어요.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오오’라고 읽는데 ‘땡땡’이라고 읽어도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아는 제 아이덴티티인 안경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번 음악들이 제가 쓴 거여서 제 눈과 제 시각을 의미하기도 해요. 어쩌다 보니 대중음악을 만드는 직업을 갖게 됐고, 사람들과의 연결 고리가 음악이잖아요. 그래서 교집합을 나타내는 벤다이어그램으로 보기도 하고, 무한대 기호(∞)나 자동차 바퀴를 연상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어떤 의미로 해석되든 상관없어요. 음악을 듣고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르듯이요.
<OO>가 나오자마자 음원 차트를 ‘올 킬’했는데 소감 한말씀 해주세요.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죠. 이번 앨범은 ‘2017년 자이언티’가 콘셉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요새 드는 생각과 제 삶을 그대로 가사에 녹여냈고, 타이틀곡도 여느 댄스곡처럼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 노래뿐 아니라 다른 수록곡들까지 음원 차트에 올라 있는 걸 보고 정말 기뻤어요. 귓가에 맴도는 후렴구도 없었고 예전처럼 보컬을 잘 들리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다!’했어요. 앞으로 다른 음악들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도 느끼고요.
어릴 적에는 화가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공부도 잘 못하고 활동적이지 않은 대신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커서 미술쪽 직업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요새도 음악 만들 땐 밤샘 작업을 하는데 그때도 밤새워 그림을 그렸어요. 물감으로 그리고 연필 그림도 그리고 컴퓨터로도 그렸어요. 제 방이 없어서 마루에 있던 어머니 컴퓨터로 태블릿 그림을 계속 그렸는데, 음악을 좋아하면서 그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게 됐죠.
그림을 접은 게 가정 형편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집안에선 대학에 가야 살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여서 그림을 그리려면 무조건 미대에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미대에 가려면 사야 할 재료도 많고 미술 학원도 다녀야 하는데,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저한테는 막연했어요. 미술 학원에 다니려고 중·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려고도 했는데, 집안 형편이 항상 어려워서 좀 보태달라는 이야기를 계속 미뤄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목표가 점점 희미해졌고 음악에 새롭게 빠져들었죠. 음악은 돈이 안 들더라고요. 재료나 악기 없이도 컴퓨터로 만들면 되니까요.
중3 때 학교 대표로 팝송 대회에 나갔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저와 장난삼아 비트박스를 하던 친구 몇 명이 저를 추천했거든요. 친구들에게 그림을 한 장씩 그려줬을 땐 소소한 감탄이 전부였는데 그 무대는 음악을 하면 이런 감동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줬죠.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당연히 미술 동아리에 들어갈 줄 알았던 제가 흑인음악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됐죠. 그때부터 기존 비트 위에 가사를 입혀서 랩 음악을 만들고, 밋밋한 랩에다 멜로디를 입히면서 노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거든요.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가 불렀던 ‘쿵’의 노랫말에도 나와 있지만, 노래를 시작한 게 17~18세 때예요.
청소년 래퍼로 활동한 고등학교 1~2학년 때 그의 예명은 ‘자이언(ZION·시온)’이었다. 교회 목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글자를 성경책으로 배우다 보니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시온(예루살렘에 있는 언덕, 성지)’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다 십자가 모양의 ‘티(T)’를 덧붙여 지금의 자이언티가 된 그는 2011년 싱글 앨범 로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소속사가 없어 음원 유통사에 제안해 가까스로 낸 앨범이었다.
당시 힙합은 주류에 들지 못하는 척박한 음악이었다. 그처럼 랩에 멜로디를 입혀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후 힙합 전문 가요 기획사인 아메바컬쳐에 들어간 그는 사이먼 도미닉, 프라이머리의 음반 피처링에 참여하면서 실력 있는 가수로 이름이 알려진다. 2014년에는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양화대교’라는 노래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 그에게 인기 비결을 묻자 겸손한 답이 돌아왔다. “완성도가 높다기보다 희소성 때문에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제 고객인 아티스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계속 선택을 받았다”는 것.
왜 하필 양화대교였어요.
양화대교라는 글자에 특별한 추억이 있어요. 택시 드라이버이셨던 아버지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양화대교거든요. “아버지, 집에 열쇠가 없어요. 어디세요?” “음, 양화대교!” “지금 밥 차려놨는데, 아빠 어디세요?” “음, 양화대교!” 정말 이상하게 늘 양화대교였어요. 하하.
가수로 활동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나요.
‘양화대교’ 나오기 9개월 전쯤 우연히 접한 댓글이 시발점이었어요. ‘자이언티는 감탄은 줄 수 있으나 감동을 줄 수 없는 가수’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 말에 상심해 9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가사를 한마디도 못 썼어요. 정말 한계다 싶어 혼자 뉴욕으로 가서 여행하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쓴 곡이 ‘양화대교’예요. 그때까지 불러본 적 없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으로 자기 고백을 가사에 담은 노래여서 당시는 정말 짠한 감정이었거든요.
독특한 발성과 창법은 타고난 건가요.
교회에서 성가대도 하고 찬양단 리더로도 활동했는데 저는 제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타고난 목소리가 그랬어요. 근데 데뷔할 때 제 목소리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낸 면도 있어요. 어깨에 패드 넣고, 신발에 깔창 넣고, 바지에 다림질하는 것처럼. 그래서 데뷔할 무렵의 저를 아는 지인 중에는 예전의 날것 같은 목소리가 그립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곡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녹음을 많이 하고 기록해놓는데 이제 숙련이 돼서 머릿속에 잔상을 저장해놓고 그걸 끄집어내요. 그럼 좀 더 마음에 들게 변해 그걸로 곡을 만드는데 그게 저도 신기해요. 어떤 직업을 가졌든 누구든 간에 자기 일에 계속 빠져 있다 보면 레벨 업을 하잖아요. 계속하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음악에 영감을 주는 것은 뭔가요.
제가 입는 옷, 먹는 음식, 만나는 친구들 다 제 음악에 영감을 줘요. 지금 하는 인터뷰도 영감을 주는 것 같고요. 제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되는 부분이 가사가 될 수도 있거든요.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이 많은 경험이에요. 앞으로 살면서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고 아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런 사건들 사이에서 어떤 곡들이 찾아오고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궁금해요. 그런 생각으로 설레면서 살고 싶어요.
음원 수입이 꽤 많을 것 같아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것만 1백 곡이 넘으니까 제가 돈을 엄청 벌었을 거라고 보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하는 것처럼 수입이 어마어마하진 않아요.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예요.
주위에 있는 여성 팬들이 자이언티의 이상형을 궁금해하더라고요.
옷을 어떻게 입든 키가 얼마든 상관이 없어요. 외모보다 감성을 중시해요. 얘기하다가 흐름이 끊기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저와 영화나 음악을 같이 감상하고 나서 의견이 너무 다르면 끌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저를 알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상대의 칭찬이 없어도 좋아요. 알고 있다는 것은 느낌으로 전해지니까요.
음악 말고 즐기는 취미가 있나요.
요새는 영화를 즐겨 봐요. 일과 취미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일이라는 생각 없이 즐기고 에너지 안 들이고도 하는 게 있어요. 영상 작업, 사진 작업, 구상처럼 음악 외적인 작업요. 아트워크랄까요. 그런 게 취미 1순위예요. 드라이브도 무척 좋아하는데 운전할 시간이 없어서 제 차가 불쌍하게 지내고 있어요. 옷이랑 2년 전에 선물받은 물건들이 그대로 쌓여 있죠.
얘기를 듣다 보니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뭘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좌우명이라는 게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삼는 정신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저한테는 ‘하자’인 것 같아요. 무엇이든 하자, 움직이자, 만나자는 그런 의미죠. 제 성향 자체가 원래 게을러서 잘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늘 ‘이럴 때가 아니야. 하자!’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어요.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웃음).
자이언티가 추구하는 음악은 리듬앤드블루스(R&B)인가요, 힙합인가요.
처음 접한 음악이 힙합이고요, 제가 추구하는 음악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장르를 가리지 않아요. 물론 제가 추구하는 성향은 있어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장르,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음악에서도 느낌이 있고 완성도가 있으면 어떤 걸 해도 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고 싶나요.
얄팍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묻어가는 뮤지션이고 싶어요. 제 음악을 알던 사람들, 알아갈 사람들과 같이 나이를 먹어가잖아요. 그 사람들의 삶 속에 코카콜라처럼, 양복처럼 계속 머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일확천금을 벌지 않아도, 큰 야망을 이루지 못해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요. 정말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서 오랜만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는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10년 뒤 자이언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제가 좀 부지런해진다면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을 거고요. 어쩌면 사업가가 될 수도 있고 아빠로 존재할 수도 있죠. 저도 그때가 되게 기다려져요. 사람들은 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안정적인 나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그게 10년 뒤일 것 같거든요. 아빠가 돼 있다면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부모님만큼은 자식에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하하.
사진제공 더블랙레이블 디자인 최정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