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비티作 ‘셀아웃’
이 책은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차별을 강렬하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냈다. 애칭인 ‘봉봉’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소도시 디킨스에서 나고 자란 흑인이다. 디킨스는 인구 대부분이 흑인인, 각종 범죄가 판치는, 화려한 할리우드나 따사롭고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와는 대조적인 이미지의 도시로 묘사된다.
봉봉은 이곳에서 자칭 흑인 연구 전문 사회학자이자 상담가인 아버지로부터 ‘심리 테스트’라는 명목의 갖은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여러 농작물을 재배하는 노동으로 채워가던 봉봉의 일상은 어느 날 아버지가 경찰관의 판단 착오로 인해 살해당하고, 삶의 터전이었던 디킨스가 도시의 지위를 잃고 지도에서 사라지는 봉변을 겪으며 위기를 맞는다.
충격적인 설정과 폭력적인 언어 사용으로 읽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많은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불편한 사실을 유려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가볍게 풀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나왔던 만큼 전에 비해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이 많이 개선됐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근한 차별을 받느니 차라리 노골적인 노예 생활을 하던 옛날이 낫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노예가 되는 걸 택한 젱킨스를 통해 흑인 차별 문제가 해결될 길은 아직 멀었음을 꼬집는다.
국민의 약 87%가 백인으로 구성된 영국 사회에서 ‘셀아웃’이 인기를 끄는 건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까닭도 있겠지만 영국인 역시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