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정신질환 전문,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 응급실’ 르포
지난달 20일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돼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 응급실’에서 안정제를 맞고 잠든 아들을 A 씨(55)가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다. 봄엔 기후가 빠르게 변해 A 씨의 아들처럼 평소 우울증을 앓던 환자가 호르몬 변화에 따른 증상 악화를 호소하는 일이 잦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봄 감기처럼 번지는 우울증
지난달 초 보안 통로로 들어왔던 A 씨(49)는 자살 시도자였다. 사흘 전 차량 안에서 독극물 자살을 기도했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던 A 씨는 이번엔 동반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다른 남성과 함께 택시를 타고 마포대교로 향하던 중 이들의 대화를 수상히 여긴 운전사의 신고로 경찰에 인계됐다.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누나도 정신병원에 입원해 A 씨를 돌볼 가족이 없었다. A 씨는 응급실 당직의와 면담한 끝에 “사실은 죽음이 두렵다”며 입원 치료를 택했다.
응급실엔 A 씨처럼 저승의 문턱에서 마음을 돌린 환자가 자주 온다. 여성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했던 한 환자의 손목에 새겨져 있던 수많은 자해 흔적, 얕은 물가에서 뛰어내렸다가 구조돼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온 30대 여성, 한강 다리 위에서 “살려 달라”며 응급실에 전화를 건 20대 남성 등…. 의료진은 이들의 행동 뒤에 자신의 행동을 주변에서 말려주길 바라는 심리가 숨어 있다고 보고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한다.
○ 환자 돌보다 병 얻는 가족·의료진
하지만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환자는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인에게 큰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남긴다. 응급실엔 자살 시도자의 가족, 자살자의 유가족을 위한 안내문이 따로 비치돼 있다. 자살 시도자의 가족에겐 “환자를 혼자 두지 말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 주라”는 당부가, 유가족에겐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가 적혀 있다. 유빈 국립정신건강센터 응급실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정신질환자나 자살자의 가족은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병을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나 자조 모임 참여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환자의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덩달아 마음속 어둠에 갇힌 직원도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7년간 근무하며 “환자를 돌보는 게 불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수년 전 퇴직한 한 직원은 최근 센터에 응급환자로 실려 왔다. 조현병(정신분열증) 탓에 대로를 서성이다가 경찰에 발견된 것. 간호조무사 주금영 씨(50)는 “퇴근 후에도 끔찍한 사건이 나오는 뉴스는 보고 싶지 않아 주로 판타지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잊는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오후 5시경엔 하굣길 중학생 2명이 응급실에 뛰어 들어와 담력 시험을 하듯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외친 뒤 웃으며 도망쳤다. 정신병원을 ‘발을 들이면 큰일 나는 무서운 곳’으로 여기는 인식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이 때문에 정신질환자가 증상을 보인 뒤 초진을 받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이 한국은 84주로 미국(52주), 영국(30주) 등 선진국보다 훨씬 길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