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중 투혼 연기… “다시 태어나도 배우” 한달전 종영 드라마서 ‘목숨건 열연’… 입원때도 외출증 끊어 촬영장 오가 동료들 “처절하게 배우소임 다해”
고 김영애 씨는 췌장암의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해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킨 진정한 배우였다. 동아일보DB
‘영원한 연기자’를 꿈꾼 배우 김영애 씨가 2015년 코리아드라마어워즈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고 남긴 수상 소감이다. 드라마 ‘모래시계’ ‘민비’ 등 46년간 100편이 넘는 드라마와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주인공부터 따뜻한 엄마, 냉혹한 악인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그가 9일 오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부부로 출연한 고 김영애 씨(오른쪽)와 신구 씨. 동아일보DB
함께 출연한 차인표 라미란 씨도 “와병 중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 처절했고, 본인의 소임을 다하려는 책임감이 숭고한 선배 배우였다”(차인표), “마지막까지 연기 투혼을 다한 그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라미란)고 고인을 회고했다.
‘월계수…’는 높은 인기로 연장 방송을 했지만 고인은 병세가 악화돼 약속된 50회까지만 출연했다. 고인은 자신의 건강 문제로 제작진이나 동료 배우, 시청자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50회가 끝날 때까지만 살아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진통제를 맞았지만, 드라마를 녹화하는 날에는 정신이 명료해야 한다며 진통제를 맞지 않고 버텨 녹초가 됐다고 한다.
고인은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출연 당시 처음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제작진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투병 사실을 숨기고 촬영에 임했다. 악녀 캐릭터인 대왕대비 윤씨 역을 맡아 유독 소리 지르는 장면이 많았는데 생전 방송에 출연해 “몸이 너무 아파 악쓰는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고통을 참기 위해 허리에 끈을 조여 매고 연기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종영 후 수술을 받고 몸무게가 40kg까지 빠질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후 영화 ‘변호인’ ‘인천상륙작전’, 드라마 ‘킬미, 힐미’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황토팩 사업으로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며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제품에 대한 방송 보도와 소송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71년 MBC 공채 3기로 연기를 시작했고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아들 이민우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11시. 02-2227-755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