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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의 지금, 여기]“믿고 싶은 뉴스만 끼리끼리 주고받는 SNS가 가짜 뉴스 온상”

입력 | 2017-04-10 03:00:00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 윤석민




4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난 윤석민 교수가 16개 국내 언론사와 서울대가 협력해서 출범시킨 ‘SNU 팩트체크’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윤 교수는 “가짜 뉴스는 90%진짜 뉴스에 결정적인 내용만 교묘하게 가짜 뉴스를 섞기 때문에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가짜인 줄 모르고 퍼나르게 된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전승훈 기자

《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 뉴스(fake news)’가 맹위를 떨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고 있는 국내 대선에서도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가짜 뉴스를 가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와 동아일보, 채널A 등 국내 16개 언론사가 협업해 뉴스의 진위를 가려내는 ‘SNU 팩트체크’(factcheck.snu.ac.kr)가 출범했다. ‘SNU 팩트체크’는 정치인의 발언,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 제기, 기타 주요 현안에 대한 뉴스의 진위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참여하는 16개 언론사에 실리는 ‘팩트체크’ 기사의 검증결과를 사실부터 거짓까지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겨 계기반의 바늘로 보여 준다. 10일부터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도 서비스된다. 지난 6개월 동안 팩트체크 시스템을 개발해 온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장(54)을 4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예전부터 유언비어, 괴담이 있었다. 그런데 가짜 뉴스 문제가 갑자기 심각하게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의 유언비어는 그냥 떠돌아다니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가짜 뉴스는 외형상으로는 방송 뉴스나 신문 기사의 형태와 똑같아 구별이 불가능하다. 마치 프로 언론인이 쓴 것처럼 육하원칙에 맞고, 리드 문장과 헤드라인도 붙이고, 발언도 인용하고, 외신이나 과학저널 같은 소스까지 붙인다. 심지어 방송사나 신문사의 로고까지 붙여 유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반인뿐 아니라 전문가들이 봐도 깜빡 속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6%는 가짜 뉴스 때문에 진짜 뉴스를 볼 때도 가짜로 의심한다고 답했는데….

“보이스피싱 전화에 한번 당하고 나면,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무조건 겁이 난다. 이처럼 가짜 뉴스에 한번 속고 나면, 모든 뉴스가 가짜처럼 보인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흐려지면 진짜 뉴스까지 사람들에게 의심받는 것이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린다.”

“짧은 대선 탓 네거티브 더 치열”

―가짜 뉴스는 주로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가.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요 통로다. 요즘 사람들은 SNS로 가까운 지인들이 보내 주는 뉴스만 주로 받아 본다. 퍼스널 네트워크를 통해 받은 뉴스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기 때문에 더 믿게 된다. 가짜 뉴스는 100% 가짜가 아니다. 90%는 진짜를 넣고 결정적인 내용만 가짜 뉴스를 섞어 교묘하게 포장한다. 이 때문에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가짜인 줄 모르고 퍼 나르게 되는 것이다.”

―SNS를 통한 뉴스 소비의 문제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현상이다. 사람들이 비눗방울 같은 곳에 갇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SNS에서 1촌, 2촌을 맺은 사람들이 보내 주는 뉴스에만 의존하면 자기 세계에 갇힌다. 이번에 촛불 시위, 태극기 시위 때도 필터버블 현상이 심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가짜 뉴스가 틈새를 파고들 가능성이 커진다. 집단 내부에서 믿고 싶은 것, 보고 싶은 내용의 가짜 뉴스가 맞춤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필터버블로 인한 가짜 뉴스 사례는….


“태극기 시위 군중의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졌던 ‘박영수 특검이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게 90도로 절하는 사진’, 촛불 시위 군중에게 퍼졌던 ‘반기문 전 총장의 퇴주잔 마시는 영상’ 같은 게 대표적이다. 사진 속 인물은 박영수 특검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었고, 반 총장의 퇴주잔 영상은 중간 과정을 삭제해 교묘하게 편집한 것이다. 나중에 이것이 가짜 뉴스로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고, 부정적 정서를 잔뜩 만족시킨 다음이다. 가짜 뉴스는 진실에 관계없이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된다.”

지난해 미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 5개 중 4개가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1위), ‘클린턴 후보가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판매했다’(3위)는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 대선 3개월간 가짜 뉴스 20개의 페이스북 내 공유, 반응, 댓글 수는 871만여 건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보다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윤 교수는 “5월 9일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검증할 기간이 짧은 탓에 어느 때보다도 ‘아니면 말고 식’의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인의 발언을 검증하는 이유는….

“지난해 11월 1일 YTN이 ‘도널드 트럼프,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트럼프가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여성 대통령으로 뽑으면 한국에서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공식석상에서 인용해 정치 외교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기사는 국내의 한 누리꾼이 ‘트럼프가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이기지 않을까’라고 가정하며 트럼프 연설 사진에 문구를 합성해 페이스북에 올린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가 정치인의 발언을 거치면 순식간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아주 잘 만든 가짜 뉴스”

―정치인의 발언 중에 어떤 것을 검증하나.

“예를 들면 문재인 후보가 3월 7일 채널A ‘외부자들’에 나와 ‘안보 문제와 관련해 내가 모든 후보자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 중에서 문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만 인용하지 않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말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검증 대상이 아니다. 이를테면 안철수 후보의 ‘사면 검토’,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선의’, 문재인 후보의 ‘전두환 표창’ 발언 등은 맥락을 거두절미한 채 시빗거리를 만든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그 발언에 대해 악의를 갖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행위를 팩트체크 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시사 정치를 다루는 팟캐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1인 미디어가 가져온 긍정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매체는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어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가짜 뉴스는 특별한 것은 아니다. 팩트체크를 소홀히 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든가, 충분히 취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하면 가짜 뉴스가 되는 것이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 외부에서 충격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한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X’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데….

“8시간이 넘는 분량인 다큐멘터리 ‘세월X’는 한 개인이 진짜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 방대한 자료를 모아서 만든 콘텐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검증 능력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일부 방송이 자로의 주장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루는 것을 보고 사실 굉장히 놀랐다. 그걸 방송에 내려면 근거 자료 하나하나까지 타당성, 신뢰성에 대해 굉장히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것 같지가 않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 만든 가짜 뉴스’에 넘어간 측면이 크다.”

해외에서도 팩트체크 시스템 개발이 활발하다. 프랑스는 지난달 AFP, 르몽드, 프랑스텔레비지옹 등 17개 언론사가 참여하는 ‘크로스체크(CrossCheck)’를 출범시켰다. 하나의 팩트를 놓고 참여 언론사가 교차 검증하고, 취재수첩도 공유하고, AFP 출신의 에디터가 최종 데스킹을 한 뒤 공동 기사 형태로 출고한다. 미국에서는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 펜실베이니아대의 ‘팩트체크오아르지(FactCheck.org)’가 3대 팩트체커로 꼽힌다.

―팩트체크 시스템 개발에 참고한 해외 모델은.

“프랑스의 ‘크로스체크’는 참여 언론사가 완전 협력해 교차 검증하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계의 협력 분위기가 그 정도로 무르익지는 않았다. 펜실베이니아대는 공공정책연구소 내에 전문 팩트체커를 고용해 자체적으로 기사를 검증한다. 그러나 서울대에 팩트체커 5∼10명을 연구원으로 둔다고 해도 방대한 팩트체크를 다 수행할 수는 없다. 팩트체커는 단기간에 양성하기가 어렵다. 언론사에 입사해서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언론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바로 능력 있는 팩트체커를 길러 내는 과정이다. 기존 언론사의 팩트체크 활동을 네트워크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팩트체크는 언론의 영역”

―각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가 있을까.

“독자들은 각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보며 어느 언론사가 더 신중하게 팩트를 검증했는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언론사 간의 이념적 편향성이 존재하더라도, 팩트 검증의 엄정성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16개 언론사가 모범을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낙수효과’가 일어나 전체 언론계에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청와대 등 정부기관에서도 팩트에 대한 해명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정부기관은 팩트체크에 참여할 수 있는가.

“팩트체크는 언론의 영역이다. 정부기관 또는 기업은 팩트체크에 참여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는 건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가짜 뉴스의 온상인 정치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권에서 ‘가짜 뉴스와의 싸움’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팩트체크는 언론과 대학 같은 공공 영역에서 맡는 것이 맞다.”

윤 교수는 “우리 사회에 아마 오래전부터 가짜 뉴스는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고, 가짜 뉴스인 줄도 모르고 소비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오히려 요즘 들어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서 가짜 뉴스를 주목하고 제대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 희망”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