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산업은행 “국민연금 요구 거부”… 대우조선, P-플랜 돌입하나

입력 | 2017-04-11 03:00:00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왼쪽 사진)이 10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사에서 ‘경영정상화 추진방안 설명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사채권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사채권자들이 채무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대우조선해양(오른쪽 사진)은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들어가게 된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뉴스1


대우조선해양의 앞날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일종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사전회생계획안제도)’의 먹구름이 어른거리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0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열고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제시한 대우조선 출자 전환 방안을 논의했지만 참석자들의 강한 반대 기류만 확인했다. 산은 등 채권단도 이날 “4월 만기 회사채부터 상환해라”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라(산은 감자)”는 국민연금의 수정 요구안을 최종 거부해 양측이 벼랑 끝에 서서 맞서고 있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은 일정을 앞당겨 이르면 11일경 투자위원회를 열고 최종 입장을 결정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이 반대 방침을 확정하면 대우조선의 P-플랜 돌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산은, 국민연금 수정 요구 ‘거부’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과 채권단은 국민연금에 “4월 21일 만기사채 상환은 대우조선의 상환 능력상 가능하지도 않다. 이후 만기가 도래하는 사채와의 형평성 및 여타 이해관계자와의 공정성 측면에서 수용할 수 없다. 경제적 실익에 따라 판단해 달라”는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대우조선과 채권단에 4월 회사채 상환과 대주주 책임을 강조하면서 이후 회사채에 대해서는 손실 비율 및 출자전환 가액 조정, 추가 자료 제공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용석 산은 부행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은 감자는 차고 넘칠 정도로 했다”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만약 17, 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자율 구조조정안이 부결되면 채권단은 21일 전후 P-플랜을 신청할 계획이다.

10일 대우조선과 채권단이 산은 본점에서 32곳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연 ‘경영 정상화 추진 방안 설명회’도 맥 빠진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채권단 측에서는 이동걸 산은 회장과 최종구 한국수출입은행장이 나섰지만, 기관투자가 측에서는 임원급 인사의 대부분이 불참했다. 회의에 참석한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사채권자들이 입장을 바꿀 만한 ‘혹하는 내용’이 없었다”며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또 다른 참석자는 “2000억 원에 이르는 기업어음(CP)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국민연금 분위기도 “더 기대할 게 없다”며 강경해졌다. 국민연금은 애초 이번 주 후반까지 산은 및 대우조선 등과 논의를 진행하고, 추가 자료를 분석한 뒤 결론을 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산은이 국민연금의 제안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기류가 강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핵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다른 제안을 하며 논의 기간을 연장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우조선이 발행한 1조3500억 원 회사채 중 국민연금은 39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4400억 원 규모의 4월 만기 사채 중 1900억 원어치(43.2%)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면 가결 요건에 미달해 대우조선은 P-플랜으로 직행한다.

○ 산은 “P-플랜 가도 시중은행에 RG 발급 동참 요구”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P-플랜 가능성이 높아지자 사전회생계획안을 포함해 돌입 이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산은과 수은은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3조3000억 원 이상의 유동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자금은 협력사들에 대금을 지급하거나 원자재를 구매하는 등 사업 활동을 지속하는 데 쓰인다. 홍성준 태평양 변호사는 “P-플랜은 사전회생계획안을 미리 짠 뒤 법정관리 기간에 채무조정을 시키고 재빨리 졸업시키는 구조여서 법정관리 기간이 짧고 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사채권자와 시중은행들의 출자전환 비율은 90% 이상으로 올라간다. 특히 사채권자들은 투자액의 6.6%밖에 건지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출자전환 규모는 자율 구조조정 시 2조9000억 원에서 3조5000억 원 이상으로 증가한다. 그만큼 대우조선 입장에서는 빚이 줄어들어 재무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P-플랜에 돌입할 경우 예상되는 계약 취소와 불확실성이다. 현재 채권단은 P-플랜에 갔을 때 계약 취소 가능성이 높은 선박은 전체 수주잔량 114척 중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8척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조선 시황이 장기 불황에 빠진 데다 국제유가가 오를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적 신인도를 잃은 대우조선의 신규 수주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P-플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선박 취소 물량, 향후 수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 것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정 부행장은 “P-플랜 시에도 시중은행들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유현 yhkang@donga.com·박창규·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