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돈 마누엘 오소리오의 초상’
성직자와 정치가, 지배자와 민중 등 화가의 칼날은 여러 군데를 동시에 겨누었습니다. 묵직한 예술로 인간의 보편적 약점을 들춰내는 데 집중했지요. 하지만 예외를 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화가는 어린이들을 순진무구한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장난감과 애완동물에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자주 그렸어요.
‘돈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의 초상화’가 대표적입니다. 초상화 주인공은 후원자였던 백작 아들로 이른 나이에 사망했지요. 그래서 그림은 안타까운 소년의 죽음을 추모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얼마 후 맞닥뜨릴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채 그림 속 아이는 자그마한 두 발로 서 있습니다. 앙증맞은 곱슬머리 소년은 애완용 새들과 함께 놀기를 즐겼던 모양입니다. 아이 주위로 줄에 묶인 까치와 여러 마리 새들이 있는 새장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평화로운 소년 뒤 어둠 속에는 또 다른 동물, 세 마리 고양이도 있습니다.
봄볕이 따뜻했던 요 며칠, 놀이터로 정신없이 쏘다니던 막내가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접었습니다. 옆 동네에서 벌어진 동갑내기 죽음 소식에 겁을 먹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몹쓸 짓을 한 장본인이 큰언니 또래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도 큰 듯했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와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도 놀이터 인근의 감시카메라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놀이기구와 친구들이 있는 불안한 진짜 세상 대신 모니터 속 안전한 가상 세계를 선택한 아이를 보며 착잡했던 때문이었겠지요. 수업 시간, 화가 그림을 소개하다가 천진난만한 소년을 노리는 섬뜩한 고양이 떼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