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서울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소속
일본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옆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1인 칸막이 좌석도 식당에 등장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어디든지 같이 가길 원하고, 함께 먹기를 바라고,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습성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신혼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한두 명이라도 안 오면 끝까지 기다리는 분위기가 많이 답답했다. ‘모인 사람들만 먼저 움직이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주변 사람을 항상 챙겨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익숙해져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게 됐지만….
한국에 와서 일본과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다. 일본 사람들은 보통 대화하는 상대와 1m 정도 떨어져 있어야 편안함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이 거리가 무척 가깝다. 한 번은 지하철 안에서 이야기하던 남자 후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내가 뒤로 물러선 적도 있었다. 결국 벽에 몸을 바짝 붙이게 됐는데 그 후배는 왜 내가 점점 뒤로 물러났는지 잘 모를 것이다.
또 결혼 전 한 모임에 갔더니 바닥에 여자들이 앉아 있는데 그 사이에 남자가 끼어 바짝 붙어 앉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한 여자 선생님이 내 남편에게 말을 걸 때 얼굴을 가까이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뒤에서 보다 보니 숨이 막힐 뻔했다. 가끔은 술에 취한 중년 남자들이 손을 잡고 가는 모습도 많이 보는데 서양인들이 볼 때는 많이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명절이나 제사 때, 큰집에 모이는 풍습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설날을 부부와 자녀들만의 작은 가족 단위로 지낸다. 한국처럼 친척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인데 그때는 가정집이 아닌 절이나 예식장 같은 넓은 공간에서 모인다.
김장처럼 이웃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한국처럼 한 집의 마당에서 다같이 배추를 씻거나, 안방이나 부엌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는 일도 거의 없다. 일본의 가정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해 대부분 문을 닫고 살고 현관문이나 창문도 열지 않는다. 동네 사람과도 현관에서 이야기하지 집에 들어오라고는 안 한다. 특별히 친해지면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이 밖에서 만난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는 ‘자서전 쓰기’ ‘수필 쓰기’ ‘시 창작 교실’ 같은 강의를 하는 곳이 많다. 이렇게 자신을 정리하는 것도 좋고, 사소하게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중에는 이것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혼자’는 외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나’와 친해져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되레 생활의 기쁨으로 바꿀 수도 있다. 혼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함께 있어도 즐겁지 않을까.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서울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