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대해부 <상>
따스한 봄볕은 많은 걸 품고 있다. 희망도 추억도 망울망울 피어오른다. 에이전트2(정양환)도 오늘 따라 맘이 둥실둥실. 마침 주머니에서 퍼지는 ‘까똑’ 소리. 청명하고 발랄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문자 청첩장. 젠장, 봄은 나갈 돈도 한 소쿠리다.
근데 요 청첩장, 그냥 못 넘길 글귀가 있다. ‘어렵사리 결혼까지 이룬 첫사랑을 축복해 주시길….’ 뭐, 천(1000) 사랑이 아니고? 급하게 요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아니지. 첫사랑은 첫눈을 홀로 밟는 거야. 소중하고 아련한.”(에이전트7·임희윤)
흐음. 첫사랑에 이리도 생각이 다를 줄이야.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0명에게도 질문을 퍼부어 봤다. 당신에게 첫사랑은 무엇이었느냐고. 그 시절은 우리에게 어떤 화인(火印)을 새겨 놓았을까.
○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이문세의 ‘광화문연가’)
먼저 간단한 수치부터 보자. 6∼9일 20대 이상 남녀 500명씩 모바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첫사랑 경험 연령은 ‘20∼23세’(34.4%)가 가장 많고, ‘17∼19세’(26.0%)가 그 뒤를 이었다. 첫사랑 대상은 ‘동갑내기나 친구’가 남성(62.8%)은 압도적인 반면, 여성은 46.2%로 ‘선배 등 연상’(45.0%)과 엇비슷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은 위기 상황에서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첫사랑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은 공감을 중요시하는 사회화 과정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서적 이유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첫사랑에게 받거나 준 선물에 대한 기억도 남녀 차이가 뚜렷했다. 남성은 ‘초콜릿이나 사탕 등’(26.6%)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응답했고, ‘직접 만든 종이학이나 십자수 등’(15.6%)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반지나 목걸이 등 장신구’(19.0%)가 가장 많았다. 특히 종이학·십자수는 5번째(12.8%)로 낮은 순위였다.
○ “Dreams are my reality”(영화 ‘라붐’ 주제곡 ‘리얼리티’)
첫사랑에 대한 오랜 속설도 궁금했다. 가장 대표적인 ‘첫사랑은 결국 헤어진다’는 과연 사실일까. 응답자들을 보면 이는 얼추 들어맞았다. 88.1%가 현재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첫사랑이 아니라고 밝혔다. 20대는 75.6%로 비교적 낮았지만 30대 이상은 모두 90%를 넘었다. 흥미로운 것은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가를 O×로 물었을 땐 59.1%가 ‘아니다. 이뤄질 수 있다’고 답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첫사랑은 가장 처음이 오래 기억되는 ‘초두효과(初頭效果)’를 지녀 오랫동안 마음에 품는다”며 “순수한 사랑만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대한 호감이 현실과 다르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어떤 식으로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크게 자리 잡는 이유는 뭘까.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왜곡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실은 첫사랑보단 그 시절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가장 아름답게 떠올리는 것”이라며 “순수했던 시절의 음악이나 영화 심지어 정치 체제를 지금도 좋아하고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하편에서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