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없던 유년 시절, 우리 집에서는 저녁마다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9시 뉴스가 끝나면 소설이나 기담 같은 픽션들을 각색해서 들려주던 코너가 있었다. 성우들의 목소리와 몇 가지 음향효과 이외는 상상으로 채워야 했는데 그러면서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의 세계가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라디오는 소니 아날로그 단파 라디오다. 소파 한구석에는 아버지의 오래된 물건들이 있는데 거기 있는 휴대용 라디오를 보고는 내 자리로 슬쩍 옮겨다 놓은 것이다. 몇 년 전 이맘때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최백호 씨가 즉흥적으로 기타를 치면서 불러준 ‘봄날은 간다’를 들었던 낭만적 순간과 ‘김태욱의 기분 좋은 밤’에서 듣게 된, 폐지를 모아 생계를 꾸려가는 할머니가 고물 라디오를 주워 그걸 계기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는 사연은 잊을 수 없다.
온종일 작업실에 있어야 하는 날이면 가끔 라디오를 들고 간다. 일요일 오후, 세월호가 드디어 뭍으로 올라왔다는 뉴스도, 서늘한 동풍이 불며 당분간 일교차가 클 거라는 예보도 라디오로 듣는다. 존 치버의 단편 ‘기괴한 라디오’에서 대체 왜 그걸 듣고 있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삶이라는 게 너무도 끔찍하고 너무도 지저분하고 너무도 무서워요. 하지만 우린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렇죠, 여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한 청취자의 신청곡을 틀어주는데 아무래도 가사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노래다. 그 곡만 듣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라디오를 틀어 놓았다 껐을 때의 갑작스러운 짧은 침묵이 지나간 후. 그래도 방금 전의 그 노래는 여운처럼 되풀이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봐요”라는,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