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충북 옥천에 다녀왔다. 매년 이맘때면 시제(時祭)를 지내기 위해 찾는 곳이다.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일인데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생각만으로 늘 맘이 설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역을 가득 메운 여행객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쏟아내는 수다가 즐거웠다.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옥천역에 이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노랗고 붉은 봄꽃과 푸른빛이 감도는 산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역사(驛舍)를 벗어나 최종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동안 온몸을 휘감는 따뜻한 봄기운에 입고 있던 반코트가 거추장스러웠다. 콧속을 파고드는 구수한 거름 냄새에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하얀 나비, 귓전을 때리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는 현기증마저 일게 했다. 평범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피곤한 몸에 생기가 돌고, 지친 마음이 위안을 얻는 기분도 들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런 것일 게다.
이런 간단한 여행길이 주는 망외의 소득도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여행업계의 ‘솟아날 구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60% 급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관광수입 손실액은 연간 5조5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연간 하루씩만 더 국내로 여행을 떠나도 내수 진작 효과가 연 최대 4조 원으로 추산된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손실의 상당 부분을 상쇄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국민의 국내 여행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여행 일수는 2009년 3억7534만 일에서 2015년 4억682만 일로 연평균 1.4% 증가에 그쳤다. 여행객도 3120만 명에서 3831만 명으로 연평균 3.5%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반면 해외 여행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여행객은 같은 기간 949만여 명에서 1931만 명으로 연평균 13% 급증했다. 지난해엔 2238만여 명으로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선진국들은 국내 관광이 관광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보고서 ‘관광 트렌드와 정책’에 따르면 국내외 관광객들이 지출하는 총 관광지출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93%), 독일(86%), 영국(83%), 미국(83%) 등 선진국은 대부분 80%를 웃돌았다. 또 조사 대상 28개국의 평균도 77%에 달했다. 반면 조사 대상에서 빠져 있는 한국은 2014년 기준으로 추정해본 결과 60% 수준에 불과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최근 국내 관광은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기형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전문가들이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지금이 내수 기반 없이 성장을 꾀하는 국내 관광산업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여행 활성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나 여행 인프라 개선 등 제도적인 보완은 갈수록 수요가 커지고 있는 국민 복지 차원에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여행은 순수하게 즐기는 게 목적이며 여행을 통한 경기 효과를 운운하는 게 ‘관치’ 냄새가 난다”고 폄훼한다. 국내 관광 경쟁력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위기에 쓰러지지 않을 맷집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평상시라면 일리 있는 얘기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현재 국내 관광산업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6·25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만들어낸 한국 경제의 기적은 국민과 정부, 기업이 혼연일체가 돼 ‘잘살아 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쳐서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