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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의 뉴스룸]선거는 연애다

입력 | 2017-04-13 03:00:00


홍수영 정치부 기자

#2012년 10월 중순. 국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아침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측의 ‘안철수를 향한 구애’ 발언을 들었다. 1년 가까이 “정권 교체의 희망”이라며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보낸 단일화 노력의 결실을 맺어야 했던 터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박근혜 후보에게 도저히 이길 수 없어서 ‘단일화 쇼’를 벌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장미대선’이 확정된 3월 중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며 ‘반문(반문재인)연대’를 되살리려 안간힘을 썼다. 문 후보는 단일화의 싹을 자르자는 듯 “문재인을 두려워하는 ‘적폐연대’”라고 규정하며 본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는 아예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도 같고 ‘후보 단일화’라는 소재도 같다. 달라진 건 공수(攻守)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사실 후보 단일화가 곧 ‘정치적 야합’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진영을 떠나 사석에선 비슷한 얘기를 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대선 전 연합’, 즉 후보 단일화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고. 그렇다고 아무 때나 단일화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수지타산이 맞아야 시나리오도 현실이 된다. 손을 잡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계산 말이다. ‘이명박 대세론’이 공고했던 2007년 대선에선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 민주노동당(권영길), 민주당(이인제), 창조한국당(문국현)이 각자도생했다.

단일화의 파괴력이 그저 ‘깜짝 이벤트’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판알을 다 튕겼으면 다음 과제는 ‘브랜드 이미지’다. 단일화를 하는 뻔한 속셈을 정당화할 정치적 명분을 찾는 일이다. 그동안 성공한 단일화에는 유력 주자들의 물리적 결합 외에 ‘+α(플러스알파)’가 있었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은 수십 년 동안 영남의 패권으로 소외된 호남과 충청의 ‘피해자 연대’라는 점을 어필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어떤가. 인권변호사와 재벌 2세의 이질적 조합에 따른 표의 확장성이 있었다.

이번 대선처럼 여의도에 단일화론이 무성했던 적도 드물다. 지난해부터 ‘제3지대’, ‘빅텐트’, 분권형 대통령제를 위한 ‘개헌연대’, 공동정부 구성을 위한 ‘통합연대’ 등 각종 연대론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내세운 명분은 다양했지만 사실상 문 후보를 겨냥한 연대였다. 단일화의 공식으로 볼 때 ‘반문연대’가 동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리 붙여 봐도, 저리 붙여 봐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빼고 다 모이자’는 건 명분도 없었다.

그렇게 애써도 이뤄지지 않던 ‘반문연대’가 ‘심리적 단일화’라는 형태로 대선 지형을 흔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접착제는 안 후보 지지층을 ‘적폐세력’이라고 공격한 것으로 읽히는 문 후보의 발언이었다. 안 후보가 5월 9일까지 ‘반문 표심’을 이끌고 갈 수 있을지, 문 후보가 반전의 돌파구를 마련할지는 알 수 없지만 교훈은 명확하다. 내 편이든 아니든 유권자를 달래고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연애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