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기자의 에코플러스]북한산 멧돼지에게 듣는 공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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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렵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이던 멧돼지는 도심 출몰 이후 인명이나 가축, 가금, 건조물, 농업, 임업 등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有害鳥獸)’로 전락했다. 지난 한 해 북한산국립공원이 걸쳐 있는 서울 경기 9개 지역에서 멧돼지를 봤다는 내용으로 접수된 시민 신고가 434건. 2014년, 2015년보다 각각 27%, 60% 늘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북한산 멧돼지 대표와 가상으로 인터뷰했다.
○ 왜 자꾸 내려오나
초봄에는 산 위에 먹을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산 아래로 내려온다. 산 아래 기온이 따뜻하므로 당연히 먹이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산 아래에는 인간이 만든 먹을거리들이 무궁무진하지 않나.
북한산 인근에는 수많은 텃밭과 주말농장이 있다. 열매와 벌레를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뷔페’나 다름없다. 힘들게 풀숲을 뒤질 것 없이 그곳의 농작물을 뽑아 손쉽게 끼니를 해결한다.
탐방로 곳곳에 놓인 인간들의 쓰레기통도 내겐 양식 창고다. 요새는 탐방로 양 옆으로 울타리를 쳤다지만, 사실 그런 울타리쯤이야. 아래로 땅을 파서 지나가면 그만이다.
여기에 인간 탐방객들이 먹고 마신 뒤 고스란히 놓고 간 음식까지. 인간 주변엔 먹을 것이 늘 넘쳐난다.
이런 탐방로로 인해 북한산이 몇 조각으로 나뉘는지 그려보니 무려 212조각이나 됐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편화됐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법정 탐방로가 끝이 아니다. 북한산 일대를 돌다 보면 분명 규정된 탐방로가 아닌 샛길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샛길이 늘면 서식지도 더 조각나고 인간의 발길이 닿음으로써 무성했던 수풀도 사라진다. 우리가 훼손된 산을 뒤로하고 아래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그러면 인간이 뭘 해주면 좋겠나
“인간 탐방객들에게 탐방 공간과 시간을 꼭 지켜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안 그래도 길이 많은데, 또 샛길을 만들어 다닌다면 우리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해진 탐방로로만 다니고, 야간·새벽 산행은 가급적 자제해 달라. 우리가 먹이를 찾고 물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이다.
우리가 한 번에 7∼13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산 멧돼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보통 북한산 멧돼지를 적게는 70마리에서 많게는 300마리까지 추산한다는데, 70마리가 300마리 되는 것도 금방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개체 수가 늘어나면 인간과 만날 기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인간을 마주치면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공격적이 된다. 그러니 가급적 만날 횟수를 줄이는 것이 공존의 방법이다.
일부 지역에서 겨울에 야생동물들 굶어죽지 말라며 먹이 주기 행사 같은 것을 한다는데, 자연도태돼야 할 병들고 약한 녀석들이 이런 것을 먹고 계속 살아남으니 자제해야 한다. 인간들의 쓰레기통에 잠금장치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 국립공원 인근 마을에서는 쓰레기통에 잠금장치를 해 곰이 열지 못하도록 하고, 종종 음식쓰레기에 쓴 약도 타놓는다고 한다. 한 번 그 맛을 본 곰은 다시 그 쓰레기통을 찾지 않는단다. 공원 주변 텃밭에도 방지책을 두는 게 필요하다.
탐방로 곳곳에 야생동물을 위한 생태통로를 조성하는 것도 방법. 우리가 탐방로를 넘어가지 않고도 산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간다면 우리를 수십 마리씩 사냥한다는 프랑스처럼 조만간 대량 포획·사냥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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