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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3700년 전 ‘실크로드 유물’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다

입력 | 2017-04-14 03:00:00

세계적 탐험가 스벤 헤딘 발견보다 20년 앞서는 ‘샤오허(小河) 무덤’ 첫 출토품… 학계 “중앙아시아 진출한 첫 유럽 문명 증거” 평가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5세기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샤오허 무덤에서 주술사들의 도구로 쓰인 인형목장구와 시신의 몸에 착용된 펠트 모자, 가죽 신발(왼쪽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확인된 유물(위 사진들)과 중국 측이 샤오허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아래)의 외관이 흡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강인욱 교수 제공


《 실크로드 기원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줄 3700년 전 중앙아시아 ‘샤오허(小河) 무덤’ 유물들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최근 새로 확인됐다. 스웨덴의 유명 탐험가 스벤 헤딘(1865∼1952)이 1934년 같은 무덤을 발견한 시점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처음 출토된 유물들로 조사됐다. 학계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남로(南路)에 진출한 첫 유럽 계통 문화라는 점에서 선사시대 실크로드의 동서 문명 교류를 보여 주는 핵심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 실크로드 선사유물 서울에 오기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오타니 탐험대의 수집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형목장구(人形木杖具) 2점과 펠트 모자 2점, 가죽 신발 1점이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로프노르 지역의 샤오허 무덤에서 출토된 것임을 새로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 유물들은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5세기 청동기시대 유물로 1908∼12년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일대를 조사한 일본 오타니 탐험대가 수집했다. 이 탐험대는 부유층 출신으로 승려였던 오타니 고즈이(1876∼1948)에 의해 구성됐다. 오타니 탐험대가 가져온 실크로드 유물 1700여 점은 1916년 3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넘어갔다가 광복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스란히 인계됐다. 박물관이 샤오허 무덤의 청동기시대 유물을 최근에야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 기록이 잘못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타니 탐험대 일원이자 승려였던 다치바나 즈이초가 불교 유물을 찾는 데 골몰해 샤오허 선사 유물의 출토지 기록을 부정확하게 남긴 데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인형목장구 2점은 치코톤에서 발견된 무기로, 가죽신발은 투루판에서 발견된 걸로 기재돼 있다. 치코톤이나 투루판은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 일대 지명이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로프노르 지역에 있는 샤오허 무덤. 배를 형상화한 목관 주변으로 일종의 묘비 역할을 하는 나무 기둥이 늘어서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그러나 박물관이 중국 신장문물고고연구소가 2000년대 들어 샤오허 무덤에서 꺼낸 유물들과 소장품을 비교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신장문물고고연구소는 2002∼2005년 샤오허 무덤 160여 기를 발굴했다. 비교 조사 결과, 소장품과 중국 측 출토품의 형태나 제작 기법이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박물관 소장 가죽 신발의 경우 세 개의 가죽을 이어 붙이고 중앙에 붉은 선을 칠한 점, 신발 끈의 위치 등 전체적인 모습이 중국 측 출토품과 꼭 닮았다. 강건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펠트로 속을 채운 뒤 중간 부위에 족제비 가죽을 두르고 왼쪽에 깃털로 장식한 펠트 모자 제작 수법도 중국 측 유물과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 샤오허 무덤에 묻힌 유럽인의 정체


흔히 실크로드라면 기원전 2세기 한(漢) 무제가 장건(?∼기원전 114년)을 보내 개척한 서역 길을 떠올린다. 이 시기 중국의 비단과 서역의 향신료를 실은 대상(隊商) 행렬이 동서양을 잇는 거대한 길을 열었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는 한나라 때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기원전 3000년부터 사막 오아시스들을 중심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박물관이 확인한 유물들은 실크로드 초창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5세기 출토품이라 실크로드의 기원을 밝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샤오허 무덤 주인공들은 중국 신장 지역에 진출한 첫 유럽 계통 유목문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신장 지역 선사시대 인골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3종의 유럽 인종과 1종의 몽골 인종이 조사됐다. 중국 학계는 유럽계 인종이 몽골계 인종보다 신장지역에 먼저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발굴팀이 샤오허 무덤에서 발견한 ‘풀로 만든 바구니’에서 우유 성분이 검출된 건 유목문화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무덤에서는 농경문화의 상징인 토기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고고학)는 “죽은 사람의 음식으로 우유를 봉헌하는 건 유제품을 신성시하는 이란 계통 유목민들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고고학계 일각에서는 시베리아 남부의 아파나시예보 문화가 기원전 2000년경 알타이산맥을 넘어 신장지역으로 유입됐다고 추정한다. 강 교수는 “샤오허 무덤 유물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실크로드에서 동서 문명이 교류한 흔적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 ‘주술사 부장품’ 인형목장구, 사람얼굴 새겨져 흥미로워 ▼
  
유물들 면면 살펴보니
펠트모자-가죽신도 눈길 끌어… 박물관, 내달 23일부터 일반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번에 수장고에서 찾아낸 샤오허(小河) 무덤 유물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인형목장구다. 끝이 뾰족해 목검을 연상케 하는 이 유물은 주술사들의 무구(巫具)이자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고대 문화에서 영성이 있는 물질로 간주된 마황과 동물 뼈가 인형목장구에 장식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 조사에 따르면 시신의 얼굴과 발 근처에 인형목장구가 1점씩 꽂혀 있었다. 강건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마황과 뼈를 주요 재질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주술사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인형목장구 상단에 사람 얼굴을 표현한 조각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약 8cm의 인면조각에서 윗부분은 모자를, 아래는 얼굴을 각각 상징하는데 여기서 불쑥 튀어나온 부위는 코를 묘사한 것이다.

인면조각은 소의 뼈와 살, 힘줄을 끓여 만든 아교로 인형목장구에 접착됐다. 이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빠른 시기의 동물성 아교로 확인됐다.

이 밖에 펠트 모자와 가죽 신발은 샤오허 무덤 시신들이 몸에 착용한 상태로 발견된 유물들이다.

펠트 모자 2점은 높이 27∼29cm, 지름 23∼24cm로 전체적으로 둥글고 표면에 주황색 털실을 두른 모양새다. 가죽 신발은 높이 13.6cm, 바닥 길이 21.5cm로 바닥과 앞면, 뒤꿈치를 이루는 황색 가죽 세 개를 갈색 털실로 이어 붙였다.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가죽 신발의 출현은 목축업이 발달된 상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인형목장구 등 새로 확인된 샤오허 무덤 유물들을 다음 달 23일부터 중앙아시아실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